자기 자신을 잘
아는 듯 하면서도 모르고, 자신이 원하는 것도 모르고, 자신이 가야할 길도 모르는 이 안타까운 소년, 홀든 콜필드. 사춘기인 그가 어쩌면
꽤나 깊은 수렁에 자기가 일부러 파고들어서 발버둥 쳤던 사춘기의 어느 한 시절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사춘기는 자기가 느끼는 것인가 어쩌면
언제부터 느끼게 될것이라고 주어지는 과제인 것인가. 다른 학우들에 비해 심하게도 그는 자신만의 고뇌에서 계속적으로 헤매고 있었다. 소설이
끝나고도 그는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나나 다른 사람들처럼 그러한 고민들을 잊고 살아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한번 놓친 끈은 다시 잡으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고 타고 다시
올라가 끈을 잡을 수 있는 사다리같은 것이 필요하기도 한다. 홀든 콜필드는 자기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언인지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의 고민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기대려고 하고 이야기를 건내곤 하지만 그가 결국에 얻는건 허무함과 피로뿐이었다.
그가 진정으로 만나고 싶고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맴돌기만 해서 결국은 그저 잠시 의지할 곳을 찾고 싶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잠시 쉴 곳은 그냥 말 그대로 잠시 놀다가 가는 곳 밖에 되지 않는다. 소설에서 자기가 정말로 만나고 싶었던 동생과
선생님을 만나면서 그는 회복의 길을 드디어 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기까지는 홀든이 그들을
만나기까지의 여러가지 수난을 겪으면서 얻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홀든은 가식으로 찌든 어른들의 대화와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그 안에서도 어른이라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 들 중 순수한 모습에 관심을 가지며 내내 기억하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자신도 곧 어른이 될 것이면서 보통의 그 어른이라는 것들이 가지고 있는 성품과 삶들을 따르기 싫지만 어쩔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자신은 그 자연스러움과 매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면서 어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어린 홀든은 사춘기라서 그런지 자신이 의식적으로 현실을 거부해서인지 자신이 접해있는 현실에 완전히 다가오지는 못했다.
사람이라는 것들이 누리는 이 삶이란 결국 밥먹기 위해 일하고 아이를 가지고 노후를 준비하며 보내는 단순한 것인가.. 그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왜 모두다 그래야 하는 건지 모른다. 동생 피비가 해준 이야기 중 오빠는 좋아하는게 있어? 이 부분을 보고 나에게도
물어봤다. 정말로 좋아하는게 있느냐고. 하지만 나도 제 2차 사춘기를 겪게 된 초기 발단 원인이 이 부분이었던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나도 홀든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물건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찾아나서는 방법은 후에 만나는 홀든의
선생님으로 부터 그 방법을 듣게 된다. 학문에 좀 더 다가가 공부를 하다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자신의 머리에 맞는 그
어떤 것을 찾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좋은 말씀도 해주셨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나고 뭔가 나도 이해가 되고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셨다는
것만 기억을 한다. 나도 사람이 사는 이유와 왜 다들 비슷하게 살아가는지는 어릴 적엔 몰랐고 크면 다 아는 줄 알았다. 하지만 커도 모르는
건 여전히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것이 되가면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현실과 좀 더 가깝게
살아가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잊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나는 사회생활을 잠시 접고 학교 생활을 하면서 다시금 홀든과 같은
사람의 알수 없는 삶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게 되었다. 때마침 이 책을 읽고 나서 그제서야 내가 사춘기 아닌 사춘기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나는 다시 이 쓸데 없는 생각들을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부처처럼 예수처럼 살다가는 알게 될지도 모르는 것에 내가 스스로 완전히
깨닫게 되지는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든다. 그냥 열심히 살고 내 꿈을 쫓으며 재밌게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