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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Book name
저자/역자
정유정
출판사명
은행나무
출판년도
2016-05-16
독서시작일
2026년 04월 01일
독서종료일
2026년 04월 29일
서평작성자
정*주

Contents

정유정의 종의 기원은 어느 날 주인공 유진에게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유진이 자신의 과거와 본성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소설은 인간 내면이 가진 어두운 모습과 폭력성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특히 작품은 독자가 제3자의 눈으로 유진을 심판하는 게 아니라,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사용하여 유진의 사고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며 공포와 혼란을 느끼게끔 진행된다. 피비린내 속에서 깨어나 흔적을 쫓다가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고, 약물에 의해 단절된 어젯밤의 기억들을 추적하며 자신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점점 자신이 범인이라는 확신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독자에게 불편하면서도 강렬한 흥미를 유발한다. 유진이 점점 자신의 본성과 마주하며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살인극을 넘어 인간 안의 악이 어떻게 드러나고 완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악의 기원은 타고난 본성인가?

본성은 타고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논의를 떠올릴 수 있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단지 태어나자마자 가지게 되는 선천적 본성을 선과 악으로 나눈 것이다. 사람의 본성이 나고 자라는 환경에 대한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단지 선과 악으로만 나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의 백지상태에서 어느 한 쪽으로 본성이 기울이게 되는 것은 선천적이기 보다는 태어나고 자라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선과 악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처한 환경에 따라 본성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견해를 사이코패스의 경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였다. 사이코패스는 공감능력과 관련된 뇌의 기능 부족에 관련이 되어있어 선천적 요인이 크다. 하지만 동시에 “사이코패스로 태어난다고 모두가 살인이나 범죄를 저지르는가?” 라는 의문을 자아낸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가 어떤 환경에 영향을 받았는지에 따라 사회에 스며드는 사람이 될지, 사회에 위험한 사람이 될지 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유진은 작중에서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단계인 ‘프레데터(포식자)’로 불리지만, 그에게 내재된 악은 단순히 타고난 기질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그를 16년 동안 가둬온 약물과 이모의 감시라는 강압적인 통제가 오히려 유진의 악을 내면에서 더 거세게 키워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유진이 약물을 끊고 자신에게서 숨겨져왔던 본능을 마주했을 때, 그에게 악은 더 이상 억눌러야 할 병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을 구속하던 질서를 파괴하고 삶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기 위한 도구로 변한다. 여기서 유진의 살인은 단순한 분노 표출보다는 자신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효율적인 전략이자 프레데터로서의 자아를 완성하기 위한 생존 방식이다. 저자는 감정이 결여된 악으로 치부되는 사이코패스의 범죄를 그들만의 생존 방식으로 그려냄으로써, 사회의 통제 시스템이 가진 모순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유진의 이모는 그의 기질을 치료 가능한 병으로 여기고 약으로 억누르려 했지만, 이는 본성을 단순히 수치로만 바라보며 생긴 잘못된 접근이다. 사이코패스는 교정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 구조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악의 본성을 탐구한 책인 다크 팩터에서도 뒷받침되는데 저자들은 사기, 학대, 살인 등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의 근원에 ‘다크 팩터(D-인자)’, 즉 타인의 희생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성향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이 성향이 단순한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악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지적 능력이나 교육 수준이 부족한 게 아니라 성급하고 유연성이 부족했다. 그리고 D-인자가 높은 사람일수록 단기적 이익에 치우치고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며, 높은 지능과 결합할 경우 사회 전체에 더 큰 위험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발화의 순간이었다. 감각의 대역폭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마법의 순간이었다. 내 안의 눈으로 여자의 모든 것을 읽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전지의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전능의 순간이었다.”

유진이 바로 그 극단적인 예다. 억압된 환경 속에서 본능을 숨기고 다듬어온 그의 높은 지능과 D-인자는, 통제가 풀리는 순간 가장 정교한 형태로 폭발했다. 결국 이모의 통제는 유진을 고치는 대신, 그의 본능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본능을 억압하고 강제하는 방식이 도리어 그 안에서 제어할 수 없는 또 다른 괴물을 키워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우리 안에도 유진이 자라날 수 있다. 

유진의 이야기는 한 사이코패스의 각성을 그린 단순한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규범에서 벗어난 존재를 억압하고 강제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회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16년간 약과 감시로 유진을 가두었던 통제는 그의 악을 소멸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 악을 내면 깊숙이 밀어 넣어 더욱 정교하고 냉혹한 형태로 만들었을 뿐이다. 이 소설은 사회가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본성을 억압할 때, 그 억압이 어쩌면 통제 불가능한 균열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는 사이코패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공감과 순응을 강요하는 사회 구조 안에서 억눌린 것들은 언젠가 반드시 다른 형태로 터져 나온다는 것을 표현하는게 아닌가 싶다. 유진은 그것의 극단적인 예일 뿐이다. 결국 이 소설은 단순히 악의 기원을 탐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통제가 어떻게 인간 안의 악을 키워내는지를 파헤친다. 종의 기원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통제와 질서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소설은 하나의 정해진 결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각자의 고유한 해석의 여부를 남긴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인간의 악이 막연히 태어날 때부터 내재된 사람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면 이 소설을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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