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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서평쓰기_임서원
저자/역자
천선란
출판사명
허블
출판년도
2020-08-19
독서시작일
2025년 11월 25일
독서종료일
2025년 12월 05일
서평작성자
임*원

Contents

 

천 개의 파랑

 

임서원

감정이라는 것은 늘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감동하거나 상처받고, 또 스스로도 그런 감정을 표현하며 관계를 이어간다. 그래서 감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라고 자연스럽게 여겨왔다. 하지만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점점 흔들렸다. 이 작품은 기계와 인간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사실 이야기의 중심은 기술이나 발달된 시스템이 아니라, ‘감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가깝다. 소설은 화려한 설정보다 조용한 장면들을 통해 감정의 본질을 보여주려 한다. 이 점에서 단순한 SF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며 놓치고 있었던 감정의 형태들을 다시 보게 하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이 소설의 중심에 있는 파랑(경주마)은 원래 경주를 위해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다. 철저히 기능과 목적에 맞게 설계되었고, 감정을 가진 존재라고 보긴 어려운 기계다. 하지만 사고로 인해 더 이상 경주에 나설 수 없게 되면서, 파랑은 갑자기 ‘목적’을 잃어버린 기계가 된다. 한편 인간 주인공 해진 역시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면서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한다. 두 존재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는 설정은 단순한 우연처럼 보이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하나의 전환점처럼 기능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실을 겪은 두 존재가 상대를 통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은, 기계와 인간이라는 경계를 잠시 잊게 만들 만큼 자연스럽다.

파랑의 행동은 특히 눈에 띈다. 해진을 기다려주거나, 그의 감정을 따라 반응하는 장면은 기계적 동작을 넘어선다. 마치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존재처럼 보일 때도 있다. 물론 이것이 의도된 기능인지, 아니면 인간들이 그런 의미를 덧씌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작품은 그 부분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한다. 오히려 그런 모호함 덕분에 감정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감정은 몸의 구조나 신경 조직이 있어야 생겨나는 것인지, 아니면 상대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 자체가 감정의 ‘증거’가 될 수 있는지 자연스레 고민하게 되었다.

해진의 가족이 파랑을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계로 취급하던 사람들도 파랑과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마음을 풀어 준다. 파랑이 특별한 말을 하거나 드라마틱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존재가 가족 구성원들의 상처를 비추는 거울처럼 기능하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파랑은 이야기 속에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촉발시키는 또 하나의 주체로 존재한다. 이 변화는 아주 차분하게 진행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저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감정의 주체는 무엇으로 정의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파랑은 생물학적 구조를 가진 존재가 아니고,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말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파랑의 행동이 해진과 그의 가족에게 위로와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달린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의 행동에서 따뜻함을 느꼈다면, 그 행동의 기원이 인간인지 기계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감정이라는 개념을 지금까지 너무 좁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자각도 들었다.

이 작품은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경계를 드러내는 대신, 그 경계가 얼마나 흐릿한지 보여준다. 기계에게 감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아니라, 그 감정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려 하는 우리의 태도 자체가 얼마나 제한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파랑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장면을 통해, 감정이라는 것은 정해진 틀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slowly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느끼는 이유도, 상대가 어떤 형태의 ‘존재’인지보다는 그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마음을 남겼는지에 달려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천 개의 파랑』은 큰 사건이나 격한 갈등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아주 사소한 장면들을 쌓아가며, 우리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어디서 오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파랑의 행동 하나하나가 계속 떠올랐다. 그는 정말 감정을 가진 존재였을까, 아니면 인간이 그 감정을 부여한 것일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질문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의 기원이 아니라 그 감정이 어떤 관계를 만들어냈는가 하는 점이다. 파랑은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의 삶을 흔들고 변화시켰고,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가진 존재에 가깝게 느껴졌다.

결국 이 작품은 미래 기술을 중심에 놓은 SF가 아니라, 서로를 ‘살아 있게’ 만드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기계든 인간이든, 누군가에게 작은 변화라도 남길 수 있다면 그 존재는 이미 감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인지 모른다. 『천 개의 파랑』은 그런 사실을 잊지 말라는 듯한 조용한 울림을 전한다. 작품 속 파랑처럼, 때로는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해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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