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버지에 대해 잘 아십니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가르쳐 주지는 않지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도와주는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등학교 시절, 휴대폰 중독 예방 교육을 받던 중 아버지가 좋아하는 색을 아는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취향도 모른 체, 휴대폰 속 콘텐츠에만 집중하는 사회를 꼬집고자 던진 질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질문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함께 해온 시간이 누구보다도 길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존경하는 아빠에게 고마운 감정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친구처럼 서로를 잘 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분명 어릴 때는 아빠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쫑알거리며 친밀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커가면서 아빠는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바빴기에 우리 사이는 소원해졌다. 어쩌면 부모님이 세상의 전부였던 어린 시절이 지나갔기에 이는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보다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우연찮은 계기를 통해 아빠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한때 친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마주하면 더 어색한 것처럼, 아빠에 대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렇게 무탈한 시간이 흘러, 서로에 대한 무지조차 잊히는 참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버지가 죽었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딸의 담담한 서술로 시작되어, 이후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픈 감정을 극도로 배제하고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죽음을 받아들인 딸은, 얼핏 보면 아버지에 대한 일말의 애정조차 없어 보인다. 게다가 아버지는 사회주의자, 그것도 빨치산이었다. 옥 생활로 인해 딸과 떨어져 지냈고, 일상에서도 신념을 고수하여 딸에게 ‘물정모르는 촌뜨기’로 평가되는 아버지는 아무리 봐도 그다지 딸과 친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빨치산의 딸’인 ‘아리’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더 커 보인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신념 및 나이를 불문하고 허물없이 다양한 사람을 사귀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위해 장례식장에 온 그들은 아버지와의 질기고 질긴 추억을 가지고 아리를 마주했다. 그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리는 그동안 자신의 기준으로만 아버지를 판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비아냥거렸던 아버지의 신념이 사실은 얼마나 큰 열정이 필요한 일이었는지를, 아버지가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결국 세상에서 낙인찍혀 쫓겨난 사정 때문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조문객들이 들고 온 아버지의 미담과, 아리가 잊고 있었던 아버지와의 좋았던 추억이 조각조각 모여 아리에게 뚜렷한 아버지의 존재를 선물했다. 아버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만 같아 마음껏 울지도 못했던 아리는 그제야, 아빠를 소리 내어 부르며 눈물 흘릴 수 있었다. 초반부 아버지의 죽음을 희화화했던 주인공의 서술은, 단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아직 수용하지 못하여 보이는 반응이었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소설의 끝자락에서 아리는 살아있을 때도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있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이제는 빨치산이 아닌 그냥 아리의 아빠로, 영원히 아리와 함께할 것이다.
아리가 죽음 이후에야 아버지를 이해한 것처럼, 실제로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 가족만 보더라도 아빠와 나는 다른 구석이 많고, 그 차이는 영원히 좁힐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 차이가 아리처럼 특별한 신념이나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아직 아빠와 나는 여전히 함께하고 있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딱히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그런데 소설 속의 이 말이 뇌리에 꽂혔다. 나에겐 어른인 아빠가 당연하여 기대기도 쉽고 탓하기도 쉬웠다. 아빠의 그늘이 시원하고 든든했지만, 때때로는 어두워서 종종 도망가고 싶었다. 아빠도 그랬을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시큰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언제까지나 함께하지는 못한다는 걱정이 드는 요즘이다. 자주 보지 못해도, 혹은 오랜 기간 볼 수 없어도 마음만은 함께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더디더라도 필요하다. 그 과정을 도와주는 책을 아직 늦지 않았을 때 발견해서 다행이다. 본 서평을 시작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쉬이 내릴 수 없었던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