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유머일 수밖에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그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그리고 초반에 아리의 아버지라는 인물을 접했을 때는 대개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혁명가, 빨치산, 유물론 등의 단어를 보며 ‘아, 책 표지에 있는 빨간 별이 바로 그 빨간 별이었구나’ 하고 잠시 사회주의 사상을 담고 있는 책인가 의심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회주의 사상가로, 특히 아버지는 평소에도 무슨 일만 있으면 유물론, 유물론 하며 사회주의 혁명가다운 모습을 보인다.
이야기는 그토록 강한 신념을 가진 아버지의 우스꽝스러운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니, 이토록 우스꽝스럽고 허무한 죽음이 또 있을까 싶다. 그래도 그 어이없는 죽음 덕분이었을까? 모든 것이 사회주의적이며 유머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느낀 생각이지만, 필자도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가는 재미와 더불어 나도 내가 몰랐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내가 몰랐던 또 다른 모습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반반한 얼굴이지만 암내 때문에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장씨 집 맏이 영자, 여든이 넘은 아버지와 담배 친구라는 미성년자 조문객, 그리고 노동이 힘들다고 고백하면서도 월북을 다짐하는 빨치산과 어느 부분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리의 대학 친구 중 발가락이 온전치 못한 친구를 편견 없이 대해주는 아버지, 어머니의 전 남편의 이름으로 서스럼없이 농담하는 부모님 등 다양한 에피소드로 아리가 미쳐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진짜’ 성격을 보여준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사회주의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아버지는 편협할 것이다는 편견을 가지고 읽었다가는 내가 되려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아리의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인물이었고, 그의 행동과 말속에는 그 신념이 깊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아버지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단순히 사회주의를 주제로 한 책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의 아버지는 그의 신념 때문에 종종 경직되고 편협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웃음과 따뜻함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면모를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을 단순한 이념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남을 이해하고, 그들의 신념과 삶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또한, 부모님의 모습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며, 그 속에서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이렇게 다양한 에피소드와 인물들이 등장하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며, 한 사람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귀중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