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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부모에 대해 알지 못한다
저자/역자
정지아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22-09-02
독서시작일
2024년 05월 20일
독서종료일
2024년 05월 29일
서평작성자
이*율

Contents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제목만 보았을 때는 아버지라는 가장의 무게에서 해방된 아버지의 일상을 다루는 치유적인 내용의 책인가 싶다.

책에 대한 예측이 무색하게도 이 책은 사회주의자,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고상욱의 죽음으로 첫 장을 연다.

이 책의 화자이자 고상욱의 딸 고아리는 아버지의 장례 과정에서 아버지의 일생에서 화자가 알고 있었던, 혹은 알지 못했던 그 수많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아버지가 제게 남겨준 것이라고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꼬리표뿐이었기에 빨치산의 딸로서 사는 인생은 아리에게 구질구질한 짐 덩이이자 속박이었다. 그렇기에 아리는 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지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몰랐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온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아리는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다채로운 삶을 살아온 아버지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 그렇게 ‘빨치산 아버지’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고상욱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 뒤늦은 이해에 대한 반성을 하며 성장한다.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아버지가 혁명가로 활동한 시간은 고작 4년. 그 4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평범한 한 인간의 남은 평생을, 그리고 그의 가족과 주변인들의 삶까지 재단하고 옥죄었다는 점은 아버지의 이야기들에서 거듭 상기된다.『아버지의 해방일지』는 3일간의 장례를 통해 전직 빨치산 아버지를 보내는 딸의 반성적 이야기라는 형식을 빌리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과 다른 신념과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죄인으로 낙인찍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남한의 현대사를 비판하고자 했음을, 그 이데올로기의 격류에 휩쓸려 상처받았던 이들을 위로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중략)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 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중략)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부모를 온전히 알고 이해하는 자식이 몇이나 있을까, 여느 자식이 그렇듯 주인공 아리 또한 그랬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나 윗 구절을 읽을 때 ‘나는 나의 부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하고 의문점이 하나 떠올랐다. 당장 스스로를 돌이켜보더라도 나는 나의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것 하나 없다 (아리처럼 부모가 증오나 원망의 대상이 아님에도).

나는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관계를 구축하며 살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당신이 인생의 연속선상에서 택했던 여러 선택들을 비꼬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오만한 자식일 뿐이다. 당신의 수많은 얼굴들을 모르는 나는, 어쩌면 빨치산의 딸만 아니었을 뿐 또 한 명의 아리일지도 모른다.

 우리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빨치산, 사회주의자들의 한국에서의 삶을 마주하고 당대 사회의 이러한 문제를 시사해 볼 수 있다. 또한, 비록 이 책의 첫번째 의도가‘부모가 죽은 뒤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잘해라’는 아닐수도 있다. 그러나 닿지 못할 아버지에게 그리움과 후회의 마음을 뒤늦게 전하는 주인공의 전상서를 통해  ‘나는 나의 부모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그의 삶에 대해 오만하게 굴고 있지는 않았는가’  하고 스스로를 돌이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학교, 알바, 회사 등 당장 내 하루를 살아가기에도 숨이 가빠 부모의 인생에 대해 돌이켜 볼 여유 따위 없다지만, 이 책을 통해 한 번쯤은 부모의 수많은 얼굴을 마주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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