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아했다. 우리가 익히 들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이봉창’이란 영웅이, 과연 무엇을 고백하려는 걸까? 1932년 1월 8일,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이봉창 의사,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그러나 이 단 한 권의 책에선 내가 그동안 생각하고, 그려왔던 이봉창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조선에서 태어나 근면 성실하게 살다가,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가슴 속에 떠오르는 뜨거운 분노를 분출해 낸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선 죽음을 무릅쓴 거사 직전 남긴 활짝 웃는 모습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에.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라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은 소위 ‘만들어진 기억’이었다. 그 기억에 사로잡혀 그것이 사실인지, 굳이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의 활동으로 이후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이어지는 등 많은 쾌거를 달성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 속에 있는 두 장의 사진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진실을 밝히는 것부터 ‘인간 이봉창’의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된다.
<누구보다도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청년 이봉창>
이봉창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평범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인간 이봉창의 모습을 알고 나니, 오히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세속적인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일왕에게 폭탄을 던질 만큼의 용기와 의지를 가진 이가,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일본인’이 되고 싶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일본에 동화된 식민지 백성으로 살던 이봉창은 한창 배울 나이에 고용살이로 겨우 끼니를 이어가는 생활을 했다. 그 과정에서 이봉창은 ‘같은 인간으로서 왜 차별을 겪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조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그는 자신이 일본인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인정했고, 일본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모든 비극은 그저 자신이 ‘조선인’이기 때문에 겪는 일이라고 자신을 비판하기까지 했다. 비록 겉으로 울분을 표출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의식만큼은 그렇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그려왔던 이봉창의 모습은 적어도 일본에 동화되고자 하는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용기>
그러나 이봉창이란 한 순수한 청년의 영혼을 더럽힌 것은 일제의 교묘한 통치였다. 일제의 통치는 이봉창이 부조리한 현실에 눈을 뜨게 되어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지는 모순을 낳았지만 말이다. 결국 그는 김구를 만나 점차 자신의 순수한 정신을 야금야금 갉아먹던 일제 식민지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탈출했다.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마침내 정한 것이다. 우리가 이봉창이라는 인물에 대해 아는 건 대부분 이 시점부터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였다. 책에서도 반복적으로 언급하듯, 이봉창의 생애는 ‘만들어진 기억’임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의 일생을 파고들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음을 두려워하여 외면한다면, 몰랐을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분명하게 깨닫는다. 불편한 진실임에도 역사학의 미래를 위해선 감정적 영역을 배재하고서, 본질적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 그러한 영역에서 이봉창의 삶을 복원하고,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도 꼭 필요한 과정임을 확신한다.
<‘만들어진’ 역사가 아닌, ‘만들어가는’ 역사로>
청년 이봉창의 꿈과 희망, 그리고 정신세계까지 앗아간 주범은 바로 일제 식민 통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국가는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지’가 아닐까? 역사란 기록되는 것이다. 이 말인즉슨 기록하는 주체의 역할이 매우 크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후대에 역사를 전하는 역할을 하는 행위는, 기록자와 독자가 상호작용을 하게 한다. 그런데 이봉창의 경우와 같이, 어찌 보면 ‘불편한’ 진실로 인해 공동체 구성원 내부의 갈등이 생길 것을 우려해 그 진실을 감추거나 덮으려 한다는 것은 큰 문제라 생각한다. 불편한 진실이든 아니든, 역사 기록자는 사실을 전달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자들은, 오롯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역사를 받아들임에 따라 역사 판단 기준을 확립하게 될 것이다. ‘만들어진’ 역사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역사이기를 바란다. 이미 국가, 공동체 단계에서 여과된 역사를 제공하게 된다면 우리는 아마 역사학에서 선악과 적폐 등으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이봉창의 영웅 페르소나>
이봉창의 영웅적 면모만 부각한 탓에, 그도 당시를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되었다. 어쩌면 그가 삶을 살며 느낀 인간적 고뇌라는 영역은 거의 배제한 채, ‘숭고한 의지를 가진 독립운동가’라는 상징을 덮어씌운 것은 아닐까? 그러한 완벽한 틀에 맞추어 우리 생각의 폭 역시 좁아지게 되었던 것은 아닐지 문득 궁금해진다. 마치 마케팅 전략에서 고객들의 눈에 띄기 위해 사용하는 ’영웅 페르소나처럼 말이다. 우리는 한 집단에서 만들어낸 페르소나를 통해 나타나는 표면적 이미지로서 ‘영웅 이봉창’의 모습만 마주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순수한 역사적 재조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 제 나이 이제 서른한 살입니다. 앞으로 서른한 해를 더 산다 한들 과거 반생 동안 방랑 생활에서 맛본 것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서른한 해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 사업에 목숨을 바치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미루어 짐작해보았을 때, 그 역시 인간으로서 쾌락을 추구하던 자였으며 그 양상이 육체적 쾌락에서 ‘독립 사업’이라는 영원한 쾌락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 시선을 두고 따라가는 것이다. 이봉창은 수도 없이 자신의 정체성, 삶의 방향을 고뇌하고 갈등하며 괴로워했다. 철저히 일본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일본어를 말하며 ‘조선인’임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자신 하나만으로 세상이 달라질 거라 믿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이봉창은 자신이 택한 길이 옳다는 것을 확신했고, 그가 원했던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을 이루었다. 한 식민지 청년의 이러한 삶의 변화 과정을 밝히는 것이, 어쩌면 영웅적 면모만을 부각하는 행위보다 더욱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할지도 모른다.
<항상 물음표를 되새기며>
나도 앞서 얼핏 이야기했듯, 이봉창이라는 인물이 태생부터 죽음까지 완벽한 영웅의 생을 살았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러길 기대했었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어려워했던 탓이다. 이봉창뿐만 아니라 다른 개인들의 삶에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여러 차례 마주한다면, 일명 ‘선택적 차별’이 된 부분 이외의 것들을 받아들일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감히 예상해본다. 그것이 나뿐만 아니라 작금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또한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인간에 의해 복원되고, 압축된 기록이기에 우리는 개개인이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에 더더욱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가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부분을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자신만의 가치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역사의 가치는 쏟아지는 기록의 홍수 속에서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고 사용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받아들이는 이 역사의 기록이 왜곡된 부분이 없는지 항상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며, ‘만들어진 기억’의 대표 격인 이봉창의 경우처럼 묻혀있는 역사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역사는 새로운 발전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이다. 그렇게 열린 사회로 나아감에 따라, 우리의 생각 역시 항상 머릿속에 물음표를 되새기며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의아했다. 우리가 익히 들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이봉창’이란 영웅이, 과연 무엇을 고백하려는 걸까? 1932년 1월 8일,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이봉창 의사,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그러나 이 단 한 권의 책에선 내가 그동안 생각하고, 그려왔던 이봉창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조선에서 태어나 근면 성실하게 살다가,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가슴 속에 떠오르는 뜨거운 분노를 분출해 낸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선 죽음을 무릅쓴 거사 직전 남긴 활짝 웃는 모습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에.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라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은 소위 ‘만들어진 기억’이었다. 그 기억에 사로잡혀 그것이 사실인지, 굳이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의 활동으로 이후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이어지는 등 많은 쾌거를 달성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 속에 있는 두 장의 사진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진실을 밝히는 것부터 ‘인간 이봉창’의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된다.
<누구보다도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청년 이봉창>
이봉창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평범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인간 이봉창의 모습을 알고 나니, 오히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세속적인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일왕에게 폭탄을 던질 만큼의 용기와 의지를 가진 이가,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일본인’이 되고 싶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일본에 동화된 식민지 백성으로 살던 이봉창은 한창 배울 나이에 고용살이로 겨우 끼니를 이어가는 생활을 했다. 그 과정에서 이봉창은 ‘같은 인간으로서 왜 차별을 겪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조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그는 자신이 일본인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인정했고, 일본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모든 비극은 그저 자신이 ‘조선인’이기 때문에 겪는 일이라고 자신을 비판하기까지 했다. 비록 겉으로 울분을 표출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의식만큼은 그렇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그려왔던 이봉창의 모습은 적어도 일본에 동화되고자 하는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용기>
그러나 이봉창이란 한 순수한 청년의 영혼을 더럽힌 것은 일제의 교묘한 통치였다. 일제의 통치는 이봉창이 부조리한 현실에 눈을 뜨게 되어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지는 모순을 낳았지만 말이다. 결국 그는 김구를 만나 점차 자신의 순수한 정신을 야금야금 갉아먹던 일제 식민지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탈출했다.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마침내 정한 것이다. 우리가 이봉창이라는 인물에 대해 아는 건 대부분 이 시점부터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였다. 책에서도 반복적으로 언급하듯, 이봉창의 생애는 ‘만들어진 기억’임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의 일생을 파고들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음을 두려워하여 외면한다면, 몰랐을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분명하게 깨닫는다. 불편한 진실임에도 역사학의 미래를 위해선 감정적 영역을 배재하고서, 본질적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 그러한 영역에서 이봉창의 삶을 복원하고,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도 꼭 필요한 과정임을 확신한다.
<‘만들어진’ 역사가 아닌, ‘만들어가는’ 역사로>
청년 이봉창의 꿈과 희망, 그리고 정신세계까지 앗아간 주범은 바로 일제 식민 통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국가는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지’가 아닐까? 역사란 기록되는 것이다. 이 말인즉슨 기록하는 주체의 역할이 매우 크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후대에 역사를 전하는 역할을 하는 행위는, 기록자와 독자가 상호작용을 하게 한다. 그런데 이봉창의 경우와 같이, 어찌 보면 ‘불편한’ 진실로 인해 공동체 구성원 내부의 갈등이 생길 것을 우려해 그 진실을 감추거나 덮으려 한다는 것은 큰 문제라 생각한다. 불편한 진실이든 아니든, 역사 기록자는 사실을 전달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자들은, 오롯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역사를 받아들임에 따라 역사 판단 기준을 확립하게 될 것이다. ‘만들어진’ 역사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역사이기를 바란다. 이미 국가, 공동체 단계에서 여과된 역사를 제공하게 된다면 우리는 아마 역사학에서 선악과 적폐 등으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이봉창의 영웅 페르소나>
이봉창의 영웅적 면모만 부각한 탓에, 그도 당시를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게 되었다. 어쩌면 그가 삶을 살며 느낀 인간적 고뇌라는 영역은 거의 배제한 채, ‘숭고한 의지를 가진 독립운동가’라는 상징을 덮어씌운 것은 아닐까? 그러한 완벽한 틀에 맞추어 우리 생각의 폭 역시 좁아지게 되었던 것은 아닐지 문득 궁금해진다. 마치 마케팅 전략에서 고객들의 눈에 띄기 위해 사용하는 ’영웅 페르소나처럼 말이다. 우리는 한 집단에서 만들어낸 페르소나를 통해 나타나는 표면적 이미지로서 ‘영웅 이봉창’의 모습만 마주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순수한 역사적 재조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 제 나이 이제 서른한 살입니다. 앞으로 서른한 해를 더 산다 한들 과거 반생 동안 방랑 생활에서 맛본 것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서른한 해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 사업에 목숨을 바치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미루어 짐작해보았을 때, 그 역시 인간으로서 쾌락을 추구하던 자였으며 그 양상이 육체적 쾌락에서 ‘독립 사업’이라는 영원한 쾌락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 시선을 두고 따라가는 것이다. 이봉창은 수도 없이 자신의 정체성, 삶의 방향을 고뇌하고 갈등하며 괴로워했다. 철저히 일본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일본어를 말하며 ‘조선인’임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자신 하나만으로 세상이 달라질 거라 믿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이봉창은 자신이 택한 길이 옳다는 것을 확신했고, 그가 원했던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을 이루었다. 한 식민지 청년의 이러한 삶의 변화 과정을 밝히는 것이, 어쩌면 영웅적 면모만을 부각하는 행위보다 더욱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할지도 모른다.
<항상 물음표를 되새기며>
나도 앞서 얼핏 이야기했듯, 이봉창이라는 인물이 태생부터 죽음까지 완벽한 영웅의 생을 살았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러길 기대했었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어려워했던 탓이다. 이봉창뿐만 아니라 다른 개인들의 삶에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여러 차례 마주한다면, 일명 ‘선택적 차별’이 된 부분 이외의 것들을 받아들일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감히 예상해본다. 그것이 나뿐만 아니라 작금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또한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인간에 의해 복원되고, 압축된 기록이기에 우리는 개개인이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에 더더욱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가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부분을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자신만의 가치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역사의 가치는 쏟아지는 기록의 홍수 속에서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고 사용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받아들이는 이 역사의 기록이 왜곡된 부분이 없는지 항상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며, ‘만들어진 기억’의 대표 격인 이봉창의 경우처럼 묻혀있는 역사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역사는 새로운 발전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이다. 그렇게 열린 사회로 나아감에 따라, 우리의 생각 역시 항상 머릿속에 물음표를 되새기며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