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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00 a식민지 청년 이봉창의 고백 /d배경식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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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청년 이봉창의 고백
Material type
단행본 국내서
Title
식민지 청년 이봉창의 고백
Author's Name
판 사항
개정판
Publication
서울 : Humanist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015
Physical Description
263 p : 삽도 ; 23 cm
Keyword
기타표제:대일본 제국의 모던 보이는 어떻게 한인애국단 제1호가 되었는가 / 찾아보기: p. 258-263 / 이 책은 2008년 10월 18일에 초판 발행된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의 개정판임 / 참고 문헌: p. 252-257 / 서지적 각주 수록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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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Overview

Book Reviews

배경식
황승준
2023-12-25
 내가 알고 있는 이봉창은 일제 강점기 시기에 한인 애국단 소속이었고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졌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전부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역사 교과서에도 사진 한 장과 몇 줄의 설명이 전부였다. 어떻게 보면 교과서에는 많은 인물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한 인물을 단 몇 줄로 설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고작 한두 줄로 설명하는 것은 또 경우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책 한 장을 넘기고 나의 앞의 발언이 무안해졌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사진이 합성 사진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필자도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했다면 합성 사진이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필자의 말을 보고 다시 사진을 관찰하면, 수류탄과 태극기가 그린 것임을 알 수 있고, 목에 건 선서문도 누가 새로 쓴 선명한 선서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필자가 문제를 제기하기까지 70여 년 동안 아무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웠고, 수없이 교과서를 봤을 교사들 및 학생들도 무심코 지나갔다는 현실이 조금 안타까웠다.  나 또한 사학과에 다니는 학생, 지금까지 역사를 배우고 좋아했던 학생으로서 사진 및 사료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가지고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합성 사진이라는 단어를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충격을 뒤로 한 채, 책을 계속 읽다 보면,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이봉창의 이미지와는 다른 이봉창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했던 이봉창은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 이후에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독립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독립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평범한 청년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고, 평범하게 살다가 갑작스럽게 독립 열차에 탄 것 같았다.  이봉창이 살던 사회는 지배자인 일본인과 피지배자인 조선인이라는 넘어설 수 없는 민족 신분으로 차등화된 하나의 불평등 사회였고 이와 같은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별은 식민 정책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이런 조선인에 대한 멸시, 차별만으로도 힘든데, 이봉창의 집안 형편은 이봉창이 문창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급격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당시 가족이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형 이범태의 벌이로 겨우 생활했다. 심지어 이봉창의 어머니는 편찮으셨기 때문에 이를 지켜보는 이봉창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이렇게 성장기에 겪은 가정 파탄으로 이봉창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이봉창은 학창 시절에 과자 가게, 약국에 취직하여 어렵게 생계 벌이를 하고 있었다. 그가 무라타 약국에서 일하고 있을 때 3.1운동이 일어났고, 의외로 그는 3.1운동에는 관심도 없었다. 일본인의 눈치를 보며 겨우 끼니를 이어가던 소년이었기에 민족이나 국가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고 당시 조선인인 것을 티내면 취직도 어렵고 승진도 어려웠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또한, 독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부분 중 하나였던 것이 이봉창은 피지배자인 조선인들에게는 세상이 얄궂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자신만 믿고 사는 병든 어머니 때문에 쉽게 사직할 수도 없었고 특별한 기술이나 학력도 없었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면 마땅히 취직할 곳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봉창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조선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은 이봉창의 삶의 태도를 바꾸었다. 이봉창은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일본인 직원들이 조선인을 흉보고 비난할 때도 그들이 조선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그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일본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더 열심히 일본어를 배우고 더 열심히 일했다. 이러한 부분만 보면 체념한 것치고 역설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때까지만 해도 독립에 대한 열망과는 거리가 아주 멀어 보인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봉창이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무시하고 차별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 이봉창은 점점 지쳐갔고, 똑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면서도 차별 대우를 받아가며 묵묵히 일해야 하는 무능한 자신을 미워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지금까지 일본인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안간힘을 쓴 일이 허망했고, 이봉창은 한 번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고 남의 의견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바로 사직을 했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러 일본행을 결심하게 되는데, 일본 내지에서는 오히려 차별 대우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행한 것도 독립 의지와는 멀어보인다. 물론 내가 지금 독립운동가 이봉창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봐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지만, 당시 일자리를 구하려고 조선인 청년들이 나날이 늘어났었기 때문에 이봉창도 일자리 하나를 구하겠다는 평범한 마음가짐이었을 것이다. 즉, 희망 없는 현실 앞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행을 택한, 먹고 살기 위해 무작정 일본행 배에 몸을 실은 식민지 이주 노동자 가운데 한 명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이봉창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나라의 역사와 왕의 얼굴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처음 깨달았는데, 문제는 이봉창이 국민의 도리로써 만나기를 열망한 사람은 대한 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일본 제국의 천황이었다는 것이다. 이봉창은 자신도 엄연한 신일본인이기 때문에 천황의 얼굴을 봐야만 진짜 일본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황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선총독부에서는 아무 죄 없는 이봉창을 무작정 잡아 가두었고, 이에 이봉창은 자신이 조선인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고, 결국 자신이 조선인임을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유치장에 있으면서 경찰의 폭압적 행동에 분노했고, 힘없는 조선인들이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물론 이봉창은 유치장에 갇혀 있는 동안 취조를 받거나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이때의 경험은 그의 의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유치장에 갇혀 있으면서 처음으로 조국의 독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아무 죄 없는 자신이 이렇게 갇히게 된 것 또한 보호해 줄 나라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지금까지 조금의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조선 독립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독립시키지 않으면 조선인들이 행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이봉창은 떳떳하게 조선인으로 살 수 있다는 상하이로 가기로 결심했고 일본 생활에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는 2년 정도 일본인으로 위장하여 살아 보면서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본명인 이봉창으로 살아가고 차별이나 압박을 받더라도 관계가 없는 조선인으로 생활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그는 임시 정부의 이름을 들었고, 임시 정부를 단지 조선인을 보호해 주고 취직자리를 알선해 주는 교민단과 비슷한 단체로 알았으며, 당연히 김구가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상하이행 배에 탈 때 이봉창은 일본인 기노시타 쇼조로 속이고 승선했고 상하이에서는 당당한 조선인으로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하이로 떠났다.  김구와 이봉창이 만났고, 김구는 처음에 이봉창을 완전히 믿지 않았지만, 천황을 죽인다는 이봉창의 태도에 그를 신뢰하고 그에게 일을 맡기게 되었다. 이봉창의 말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한 번 결심하면 반드시 끝장을 보고야 마는 그의 성격과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아마 김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이봉창의 말을 듣고 지원을 해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김구는 이봉창을 믿고 수류탄을 구해주었고, 자금까지 지원해주었다. 물론 김구도 이봉창의 희생만으로 당장 조선의 독립이 달성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봉창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희생자를 파견하여 반드시 독립운동의 꺼진 불씨를 다시 지피고 싶어했다. 즉,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렇게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평범한 노동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천황을 죽이려는 목표를 갖기까지의 과정, 독립 의지를 갖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김구와의 만남을 통해 이봉창의 독립 의지와 천황 암살을 성공하려는 목표 의식을 보여준다. 이후 책에서는 날짜별로 이봉창이 천황 암살 시도를 하기 전까지의 과정이 세세하게 적혀 있다. 어찌 됐든 이봉창은 수류탄을 던졌고 폭발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이봉창은 거사가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소리만 요란했고 막상 수류탄의 위력은 약했다. 이때 이봉창은 자신이 김구에게 수류탄의 성능을 실험하자고 했는데, 수류탄의 성능을 장담했던 김구 때문에 성능을 실험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고, 김구도 원망했다. 결국 마지막에 일본 경찰에게 잡힐 때도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잡힐 뻔했는데 자신이 범인이라고 당당히 외쳤다. 여기에서도 이봉창의 확고한 성격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이봉창의 의거는 일본 사회를 경악케 했고, 이는 그동안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조선인들이 일본의 식민 통치를 즐겨 받고 있다고 선전해 온 일본의 식민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였다. 또한, 이봉창의 희생은 꺼져 가던 조선 청년들의 가슴에 다시 한 번 독립 운동의 불길을 지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이 이봉창을 분노하게 했고, 무엇이 이봉창의 심리를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았다. 우선 이봉창은 정체성의 혼란, 이중 정체성을 벗어나는 데 꽤 오래 걸렸고, 유치장에 갇히면서 현실에 분노했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면, 민족이 원하는 삶을 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제서야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나도 독립운동가의 이봉창을 단지 몇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그의 삶을, 한 독립운동가의 삶을 전체적으로 세세하게 살펴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봉창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일본인의 이름으로 살며 인정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조선인이라는 타이틀을 벗을 수 없자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고, 그 혼란은 이봉창을 방탕한 생활로 이끌었다. 아마 어디에 가도 인정받을 수 없는 조선인이라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신일본인을 꿈꾸면서 꿋꿋하게 일본인 신분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인 신분으로 살수록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현실 자각과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딱지를 뗄 수 없다는 힘든 현실,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조선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이봉창은 조선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떳떳한 조선인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과정을 찾아갔고 유치장에 갇히면서 조국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독립 의지를 키워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봤을 때 어떻게 보면 이봉창은 그냥 갑작스럽게 독립운동 현장에 뛰어든 것 같기도 하다. 즉, 조선인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싫어하는 평범한 사람, 그저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평범한 노동자가 자신의 이중 정체성에 혼란이 오면서 그 과정을 찾다가 갑작스럽게 조국의 의미, 민족의 의미를 깨닫고 우발적으로 독립 운동을 하고 희생된 케이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발적으로 독립 운동 현장에 뛰어든 것 같은 느낌은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일반 시민으로 살다가 독립투쟁이라는 선택을 한 것은 경이롭고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조선인으로서 천황 살해를 실행에 옮긴 사람은 이봉창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갑작스럽게 독립 의지를 불태우긴 했지만, 그 누구보다 조국, 민족, 독립에 진심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봉창이라는 한 사람의 평범한 삶에 대해 집중했는데, 이봉창이라는 사람의 심리적 변화, 성격 변화, 삶의 태도 변화 등을 보면서 한 가지 교훈을 얻기도 했다. 책의 구절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을 보고 나도 지금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무엇을 해야 맞는 건지 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지만, 이러한 과정을 충분히 거쳐 이봉창처럼 확고한 의식 및 태도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저 구절이 나의 인생 가치관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봉창은 느리게 독립이라는 길에 합류하긴 했지만,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했다. 나도 지금은 조금 혼란이 오더라도 내가 원하는 삶,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파악하고 그것을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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