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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요조 산문
Material type
단행본 국내서
Title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요조 산문
Author's Name
요조 지음
Publication
서울 : 마음산책 2021
Physical Description
235 p ; 21 cm
Keyword
요조의 본명은 '신수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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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dings Information

Call no. : 814.7 요75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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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osed Stack Requ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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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386300
Call no.
814.7 요75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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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자료실(한림도서관4층)
Status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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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38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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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7 요75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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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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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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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Overview

Book Reviews

요조
김미나
2023-08-30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어른스러움 –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발목에 좋다는 것들 이것저것 해봤잖아요. 근데 나아지지 않고 계속 골골하니까 이제야 실감이 나고 신경이 쓰여요, 제 나이가. 나이 드는 게 별게 아니잖아요. 되던 게 안 되는 거잖아요.” 트레이너는 내 한쪽 다리를 든 채로 잠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거 정말 생각해볼 문제 같아요.” 나는 갈수록 삶으로 하여금 다가오는 크고 작은 자극들에 무던해지고 있다. 이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건의 겪음이 원인이다. 예측하는 것들이 줄어들고 경험에 의지하기 시작하니 기대라는 것이 없다. 그냥 그것이 나이듦의 자연스러움이라고 받아들이면 편하다. 회피는 때로 잠시의 안온함을 가져다 주었다. 다만 요조는 나이 드는 게 별게 아니라고 한다. 되던 게 안 되는 거라고.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달리기를 사랑으로 여긴 저자는 여러 생각을 거치고 끝내 더 큰 사랑을 받아 들이기로 한다. 달리는 행위에서 내 피와 미세한 혈관들이 움직이고 존재감을 느끼게심장 박동으로 알려준다. “살아있어.” 더 이상 우울하지 않다고 한다. 요조 작가의 수긍은 독자에게 충만함을 준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 대담한 태도로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이재석)막 쓰레기가 쌓여 있는 집 청소하러 가시면 속으로 부글부글할 때 없으세요? 솔직히 저는 좀 거기 사는 사람이 한심해 보일 때도 있을 거 같아요.” “김완) 어떤 아픔이 있어 그런 단정한 일상을 다 놓아버리게 된 건지 저는 잘 상상이 안되고 또 마음대로 상상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곳을 청소하러 가면서 거기 살 던 분들에 대한 판단을 일절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보이는 것만으로 결코 다 알 수 없을 테니까요. 거기 깃든 아픔들은 제가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합니다.” 나는 복잡한 아픔들에 주로 모른다는 말로 안전하게 대처해왔다. 빼어나고 노련하게, 그리고 예의 바르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와중에 김완이나 고승욱 같은 사람은 모르는 채로 가까이 다가간다. 복잡한 아픔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기어이 알아내려 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손을 내민다. 한 번은 친구가 집에서 혼자 술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나는 항상 가까운 이들의 아픔에 눈을 감았다. 그것이 예의이자 배려라고 생각했다. 알지 않는 것이 배려이자 모르는 것이 약.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문장을 그렇게도 믿어왔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또 다른 친구와 같이 있었는데, 걱정이 되니 전화를 걸어보자고 내게 권했다. 전혀 생각치도 못한 위로의 방법이라 걱정을 했으나 전화 건너편에는 혼자 취기로 목을 감은채로 미소를 띄었다. 그와 나름 반년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검은 화면 뒤편의 웃고 있는 친구를 보였다. 때로는 모른다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모르는채로 그저 손을 내미니 더 면밀한 이야기와 관계는 깊어졌다. 나는 어쩌면 도망치고 있는 것을 ‘배려’와 ‘겸손’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지워왔는지도 모르겠다.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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