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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김숨 장편소설
Material type
단행본 국내서
Title
흐르는 편지 :김숨 장편소설
Author's Name
김숨 지음
Publication
서울 : 현대문학 2018
Physical Description
309 p ; 2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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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dings Information

Call no. : 813.7 김56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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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7 김56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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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중 ( 2026.04.29 ~ 2026.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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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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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Overview

Book Reviews

김숨
이지우
2026-06-02
일본군 위안부라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마주할 때, 우리는 대개 수치화된 공식 기록이나 거시적인 정치적 담론에 먼저 시선이 머물곤 한다. 그러나 그 비극의 한복판에서 매일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과 내밀한 감정은 흔히 거대한 역사적 서사 뒤로 묻혀버리기 십상이다. 김숨 작가의 장편소설 흐르는 편지는 실제 피해자들의 증언과 기록을 치밀하게 바탕으로 삼아 쓰인 작품이다. 그렇기에 책장을 넘기는 동안 마주하는 문장들은 단순한 허구적 서사로 읽히지 않고,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아픔과 숨결을 현실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소설은 만주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어린 조선인 소녀 금자가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 편지들은 결코 어머니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글을 모르는 금자가 위안소 근처의 강가에 앉아 물 위에 손가락으로 받아 적은 마음의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수신인에게 닿지 못하고 물결을 따라 이내 지워져 버리는 이 편지의 형태는, 당시 피해 여성들이 자신들의 잔인한 고통을 사회에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비참한 현실을 고스란히 상징하여 가슴이 먹먹했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던 한 사람의 감정과 기억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을 통해, 금자가 겪은 현실과 그 속에서 발견한 생명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먼저 깊게 생각한 것은 ‘기억과 증언’의 문제다. 오랜 시간 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우리 사회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고, 피해자들 역시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자유롭게 털어놓을 수 없는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김숨 작가는 이러한 역사적 현실과 숨겨진 고통을 소설 속 금자가 쓰는 물 위의 편지라는 장치를 통해 보여준다. 금자는 계속해서 어머니를 부르며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과 외로움을 털어놓지만, 그 편지는 끝내 전달되지 못한 채 흐르는 물결을 따라 지워져 버린다. 이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던 현실을 비유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잊혀가는 기억을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처절한 시도이기도 하다. 비록 당대에는 전달되지 못한 편지였을지라도,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그 기억의 알맹이들은 소설이라는 형태로 오늘날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흐르는 편지는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기록한 소설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결코 잊혀서는 안 될 기억을 남기고 전달하려는 것이다.  이어서 주목하게 되는 또 다른 주제는 ‘전쟁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가’이다. 만주의 황량한 벌판에 위치한 낙원위안소에서 여성들은 가장 먼저 자신들의 이름을 박탈당한다. 금자 역시 조선의 이름을 빼앗긴 채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며, 고향에서의 삶과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점차 상실해 간다. 이름이 지워진 자리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군인을 상대해야 하는 잔혹한 노동과 육체적 유린만이 반복될 뿐이다. 몸이 아프거나 병이 들어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되며, 죽음조차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위안소의 환경은 극도로 비참하고 메말라 있었다. 특히 어린 소녀들까지 아무런 선택권 없이 끌려와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전쟁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잔인하게 무너뜨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곳에서 여성들은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전쟁 속에서 그저 물건처럼 소비되고 버려지는 존재로 취급된다. 소설은 금자의 메마른 시선을 통해 한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밑바닥까지 유린한 심각한 폭력의 실상을 생생하게 고발하여 보여준다.  그러나 소설이 이토록 참혹한 절망과 비참함만을 나열했다면 가슴 아픈 고발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지닌 진짜 성취는 그 지독한 죽음의 그늘 속에서도 끝내 고개를 드는 ‘생명의 가치’를 포착해 낸 장면에 있다. 소설 초반에서 금자는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자신의 아기가 차라리 죽어 버리기를 바란다. 자신의 삶이 죽음보다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며, 그만큼 위안소에서의 삶이 절망적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금자의 내면에는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그녀는 폭격의 공포 속에서도 은실과 군인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웅크리는 본능적인 모습을 목도한다. 그리고 함께 고통을 나누던 동료 에이코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화장하며, 죽음의 고통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무수한 죽음의 목격은 금자의 내면에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단단한 연민을 길어 올린다. 그리고 이 마음은 점차 뱃속 아기의 생존을 바라는 간절한 삶의 의지로 이어진다. 거창한 명분이나 미래에 대한 거대한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숭고한 깨달음이 지옥 같은 위안소 한복판에서 피어난 것이다.  흐르는 편지는 책을 다 읽은 뒤에도 그 먹먹함이 일상 속에 아주 오랫동안 맴도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역사적 비극을 다룬 소설로만 읽었지만, 작품을 최종적으로 읽으며 마주하게 된 것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보다 그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이었다. 금자의 편지를 따라가다 보니 늘 멀게만 느껴졌던 역사 속 사건도 결국 누군가의 일상과 감정, 그리고 상처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단지 고통과 절망만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가장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완전히 잃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금자는 끊임없는 폭력과 죽음 속에서도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결국에는 아이의 생존까지 바라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이 작품이 단순한 역사소설을 넘어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놓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숭고한 이야기라는 점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다. 결국 흐르는 편지는 과거의 비극을 환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 자체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 작품이었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사건과 공식 기록 중심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면에 숨죽이고 있던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에 주목하게 만든다. 특히 끝내 도달하지 못한 금자의 편지는, 역사적 기록만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개인의 절절한 감정과 상처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흐르는 편지는 나에게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소외되었던 개인의 삶을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마주하고 보듬어야 하는지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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