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서자’를 키워드로 신라 제 52대 효공왕의 왕위 계승 과정을 검토하면서 최치원의 역할과 활동을 살펴본 것이다. 효공왕은 신라 왕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자’로 특기되었다. 효공왕이 서자로 칭해진 것은 생모에 따른 것으로, 효공왕의 생모는 헌강왕의 正妃가 아닐 뿐 아니라 헌강왕과 사적인 관계였다. 그러므로 효공왕은 존재의 인지 여부를 떠나 헌강왕의 아들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왕위 계승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헌강왕 사후 정강왕, 진성왕이 정통성을 가진 왕위 계승자로 여겼으며, 진성왕 즉위 후에도 후계자 구도에서 효공왕은 배제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역학관계와 부계 계승 원리가 중시되면서 서자인 효공왕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유례없는 서자 출신의 왕위 계승은 정통성을 위협당할 여지가 있었다. 효공왕의 왕위 계승에는 헌강왕과의 혈연 관계 강조, 양위라고 하는 유교적 왕위 계승 방식, 헌강왕비와 의제적 모자 관계 형성 등과 같은 정치적 장치가 특징적으로 보인다. 효공왕은 태자 책봉을 거쳐 왕위를 계승했지만 안정적으로 정통성을 인정받은 상황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효공왕의 왕위 계승 과정에서 최치원이 실무와 정치적 명분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치원은 진성왕의 양위를 거쳐 효공왕이 즉위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보낸 외교문서의 대부분을 대필하는 등 실무를 담당하면서 효공왕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효공왕의 왕위 계승이 ‘양위’라고 하는 유교적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역시 유학자 최치원의 역할을 짐작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효공왕이 헌강왕의 아들로 공인된 뒤 태자로 책봉되는 과정에서도 최치원의 역할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한다.
The thesis focused on Choi Chi-won’s role while examining the background of the succession of King Hyogong to the throne of Silla’s 52nd King Hyogong. King Hyogong was the illegitimate child of King Heongang. In Silla, bastards were excluded from the succession of the king. However, as the political dynamics and the principle of paternal succession were emphasized at the time, the bastard, King Hyogong, came to the throne. King Hyogong, who was from a son of concubine, needed to secure the legitimacy of succession to the throne. It was Choi Chi-won, a Confucian scholar, who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succession of King Hyogong to the throne. Choi Chi-won not only supported King Hyogong’s succession to the throne, but also played a role in justifying King Hyogong’s succession to the throne through a paternal-centered genealogy consciousness, a Confucian way of inheriting the throne called concession, and sustain goo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