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祈雨祭)는 중국과 한국의 강우 부족 상황을 문화로 잇는 계기였다. 《춘추번로·구우편(春秋繁露·求雨篇)》에는 고대 중국의 기우(祈雨) 방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동중서(董仲舒)에 이르러 하늘과 인간이 감응하고(天人感應) 금목수화토의 따름과 거역(五行順逆)에 따라 비를 비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조선조의 사시(四時) 기우 또한 그 영향을 보여주게 된다. 조선의 기우제는 왕실의 친제(親祭)와 관(官) 주도의 의식(儀式), 그리고 민간의 자발적인 기우로 나뉘었다. 국가 차원의 기우는 그 장소에 따라 국가기구, 관방 제단, 자연 장소, 종교 장소 등으로 나뉘었다. 이 제의(祭儀)는 1차 기우부터 5차 기우까지가 한 주기이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6차 기우부터 11차 기우까지 이어졌다. 9, 10차에서는 도마뱀 기우가 실시되고, 11차 기우에서는 ‘남문을 닫고 북문을 연다(閉南門開北門: 남문을 닫고 북문을 여는 것은 사회정치적인 활동을 삼가면서 조상과의 소통을 구한다는 뜻이다)’와 ‘시장 이전(遷市)’이 함께 진행되었다. 12차에 이르러서는 오방토룡제(五方土龍祭) 기우를 거행하였다. 조선의 기우제는 그 토착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송(宋) 이후의 구우법(求雨法)을 승계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남문을 닫고 북문을 연다’나 도마뱀 기우가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기우는 동중서의 방법이 변증법적으로 계승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의 구우법이 국가적 차원의 의식형태로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다. 조선이 유학을 국학으로 삼은 것 또한 기우 형식의 근거이다. 유가 사상에 기초해야 하는 조선의 기우제는 사찰의 그것을 배척하고 부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According to Dong Zhongshu’s idea of heaven human interaction, adopting a method that conforms to the laws of yin and yang and the five elements when praying for rain can to some extent achieve the goal of adjusting yin and yang for rainfall. And this idea was also actively applied after it was introduced to the Korean Peninsula. Especially during the Li Dynasty of Korea, while retaining ancient Chinese rain praying techniques, it also incorporated Korean unique rain praying methods and made strict regulations in terms of form. This can be said to be a concretization of Dong Zhongshu’s rain praying thoughts, and can also reflect another aspect of Dong Zhongshu’s dissemination and influence on the Korean Peninsu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