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막론하고 한국사 연구에서 대외관계사는 많은 관심을 끄는 분야이다. 역사 연구가 국내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국제적인 변화도 함께 고려하여 폭넓은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에는 최근 많은 연구자가 동의하고 있다. 대외관계사 영역에서도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등장하여 학교 교육에 반영되었고, 그중 고려 전기 대외관계에 관한 연구는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고려 전기의 대외관계에 대한 중학교 역사 교육과정의 내용 체계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큰 변화를 이루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은 고려 전기의 대외관계라는 대주제 아래에, ‘고려의 대외관계를 전쟁과 교류로 나누어 설명할 것’이라는 성취기준을 명시하여 전쟁과 교류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나타냈다. 반면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역사 교과서의 고려시대사 단원 전체에 대하여 ‘고려와 동아시아의 다원적 국제 질서’라 하여, 10~14세기 동아시아 국제 정세와 고려 정치의 변화를 연관 지어 이해하고자 하였다.하지만 이후 발표된 2018 부분 개정 교육과정은 고려의 성립과 발전을 동아시아 국제 질서와 연관하여 다룬다는 본래의 학습 목표를 바탕으로, 대외관계사가 ‘고려의 대외 관계’라는 소주제로 압축되었다. 이에 내용 체계나 학습 요소 등 전반적인 면에서 이전보다 간소화되었고, 교육과정이 일련의 수정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검정 교과서 간에 서술의 차이가 나타났다. 초안에서 고려시대사 대주제의 핵심어인 ‘다원적 국제 질서’가 목차나 본문에 여전히 삽입된 교과서가 있지만,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서술 체제를 유지한 교과서로 나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중학교 역사② 7종 교과서 중 다원적 국제 질서는 미래엔, 지학사, 재교육 교과서에서만 언급하고 있다. 이 외에 금성, 동아, 리베르스쿨, 비상 교과서에서는 다원적 국제질서라는 표현을 확인할 수 없었다. 새로운 학습 내용을 두고 교과서마다 서술 표현의 여부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교육 현장의 혼선을 초래할 수 있고 이는 시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행 중학교 역사② 3종의 교과서에서는 다원적 국제질서에 대해 언급이 있기는 하나, 문제는 그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교과서가 없다. 그나마 미래엔 교과서가 대략적인 의미를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서술하고 있지만, 설명이 상세하지 않다. 물론 다원적 국제질서라는 개념이 중학교 과정에서 적합한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10~13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흐름과 인과관계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간 축적된 학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보완한다면 개념 설명이 잘 반영될 것으로 생각한다.2022년 12월, 새 교육과정이 고시되었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고려의 성립과 변천에 관한 집필 기준에 따르면 “고려의 대외항쟁은 침략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의 산물이 아니라, 다원적인 국제 관계에 대응하는 고려의 탄력적인 대외 정책이라는 시각에서 서술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여전히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기조에 따른 다원적 국제질서를 강조하고 있으며, 고려 전기의 국제적 관계를 다원적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요컨대 2015 개정 교육과정 중학교 역사② 과목에서 중점을 두고 변화를 모색한 부분은 대외관계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개편되면서 서술의 정도가 교과서마다 차이를 보였고, 특히 일부 교과서만이 다원적 국제질서를 언급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다원적 국제질서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다시 강조하다시피 ‘다원성’이라는 현대 사회에 조응하여 드러나는 개념이다. 이는 앞으로 역사적으로 짚어봐야 하는 교과서 서사의 주요 주제인 만큼, 본 연구에서는 서술의 개선점이나 보완점을 조금 더 깊이 탐구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