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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를 기대할 수 있도록 하기
저자/역자
이국환
출판사명
산지니
출판년도
2020-11-10
독서시작일
2021년 10월 06일
독서종료일
2021년 12월 15일

Contents

이국환 작가의 책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는 각종 지식과 사례 그리고 그것들을 사랑하는 일상으로 가득한 책이다. 리뷰들을 보면 책과 공부를 사랑하는 자의 수필집이라 많이 소개했던데 과연 그럴만하다. 지식과 진심이 페이지마다 어우러져 있었고 그 때문인지 이 책은 시민들이 뽑은 \’2020 원북원부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을 알게 된 계기가 강의 때문이었다. \”수필과 논술\”이라는 강의인데 학생들이 둘러앉아 각자가 쓴 수필에 대해 서로 감상과 생각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방식의 강의였다. 교수님은 그 한가운데에서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 성함은 이국환. 그렇다. 바로 이 책의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강의 첫 주에 교재로 쓰였다. 첫 주에는 학생들이 써온 글이 없으니 교수님은 본 책으로 강의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수필집을 참고한다 하여 수록된 글을 예시로 들고 \”이런 방식으로 쓰는 게 수필이다.\”라는 식의 강의가 될 줄 알았다. 물론 그렇게 다루기도 했지만 그는 더 나아가 책의 내용을 활용했다. 학생들에게 책의 내용에 관해 감상을 물었고 학생들은 저마다 다양한 페이지를 논하며 감상을 발표했다. 그러면 교수님은 해당 글에 후속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 학생이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저는 150 페이지에 \’올림픽을 계획하고 준비하며 실수에 대한 불안함이 없었다면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의 완벽한 연기를 우리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쓴 점이 인상 깊었어요. 저 역시 불안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이걸 읽고 불안을 마냥 회피하려고만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어요. 이 글의 마지막 문단 – 불안이 곧 영혼을 일깨우는 촉매제가 된다 -는 문장은 앞으로도 가슴에 품으려고요.\”

 그러면 교수님은 감상에 고마움을 표한 뒤 그 글에서 다룬 사례나 지식에 관해, 혹은 글에 싣지 않은 내용에 관해 알려주었다. 나는 수필집이 교육에도 쓰일 수가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제부터는 여기서 \’교수\’를 \’작가\’라 칭하겠다. 이 글은 그의 저서에 관한 글이니까.)

 그런 방식이 가능했던 것은 이 책이 단순히 일기적 수필, 감상적 수필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에토스란 어떤 것인가?\”, \”불안은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촉매제로 작용하는가?\”, \”가족은 어떤 것인가?\”. 하지만 이 책을 논문, 르포로 일컫지 않고 수필이라 부르는 이유는 저자의 사적인 면모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렇게 밝혔다.

 \”이 책은 포멀 에세이와 인포멀 에세이가 섞여 있습니다. 하나의 글 안에 두 요소가 섞여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포멀 에세이는 논술, 철학서, 칼럼, 소비평 등 격식을 갖춘 공적인 글이며 인포멀 에세이는 편하게 써 내려간 일상 글 등을 일컫는 개념이다. 이 둘의 특성을 버무린 본 책은 교재 같기도 하며 일기 같기도 하며 명상록 같기도 하다. 지식과 경험과 사색이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셋은 서로를 보완해 준다. 지식이 지식만을, 경험이 경험만을, 사색이 사색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 각각을 보조해 주며 한 편의 글을 마감해 낸다.

 경험과 사색을 다루는 것은 쓰기의 영역이기에 쓰다 보면 훈련되는 지점이다. 지식은 다르다. \’쓰기\’가 아닌 \’공부\’의 영역이다. 지식을 많이 다루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얼마나 공부를 해왔는지 보여준다. 정약용의 일생, 조셉 윌리엄스의 에토스 이론, 공자의 논어, 소포클레스의 비극 등 역사, 논문, 작품 모두 가릴 것 없이 저자는 차용했다. 주류 수필집에서는 느끼기 힘든 무게감이었다. 다 읽고 나서 총체적으로 든 감상은 바로 \”아, 이 분 공부 정말 많이 했구나.\”였다.

 이 지점에서 나는 작곡 기법인 샘플링을 떠올렸다. 샘플링은 기존에 있는 곡의 루프를 샘플로 따와 재창조하는 작법인데 이 책이 그러했다. 각각의 샘플들은 주제에 접근하는 작가의 진심과 만나 글로 재창조되었다. 책에는 작가 혼자만 존재하지 않았다. 작가가 이론이나 사례를 빌려온 사람들, 그리고 작가의 주변 사람들 등등이 등장하는 것을 보며 나는 사람이 오로지 독립된 개체로 존재할 수 없음을 느꼈다. 한 사람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글과 이야기가 있구나 생각했다.

 공부하게끔 하는 수필집이었다. 이 책을 읽어 생긴 변화를 이야기해보라 하면 \’공부를 더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에 등장하는 각종 사례와 정보를 읽어나가며 나는 기쁨이 샘솟았는데, 이는 내가 공부하고 사유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느끼도록 해주었다. 그간 공부 외의 다른 것들 – 이른바 생활 걱정, 미래 걱정 등 -에 신경 쓰느라 잊고 있었을 뿐 예전부터 나는 역사,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독학해왔고 내면과 외부를 이해해가는 감각에 계속 끌림을 느꼈다. 이 책 역시 저자의 그런 면을 충분히 보이고 있었기에 나는 공명할 수 있었다. 더 공부해내가야지. 성실함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제목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가 괜히 응원처럼 느껴진다. 때마침 이 서평을 쓰는 지금은 오전이다. 다 쓰고 난 후에도 공부를 이어갈 생각에 설렌다. 이게 어쩌면 오전을 사는 이가 오후를 기대하는 감각 아닐까? 순간에 열심인 요즘엔 가까운 미래가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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