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과 ‘정리해고’라는 낯선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는 지금이 되었다. 장기적인 불황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는 중이다. 이웃나라 일본 역시 버블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라 코이치의
『마루 밑 남자』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써의 안타까운 한숨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저절로 배어나왔다. 마루 밑
남자는 총 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가 수록된 단편집이다. 표제작 ‘마루 밑 남자’를 필두로 ‘튀김 사원’, ‘전쟁관리조합’, ‘파견사장’,
‘슈샤인 갱’이 실려 있다. 각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정과 회사에서 쫓겨난, 버림받은 인간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회사에만
몰두하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편, 청춘을 바쳐 일한 직장에서 1순위로 정리해고를 당한 여자, 나이 50에 겨우 과장에 올랐으나 바로
해고당한 중년남자 등 그들은 하나같이 억울한 사연의 소유자들이다. 하지만 독자가 마냥 그들을 감쌀 수도 없다는 것은 이 작품 속 배경에
씁쓸함이 녹아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는 남편을 버린 아내도, 여직원과 중년남자를 정리해고 해버린 회사에도 일방적인 비난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네들도 그네들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다는 사정을 읽는 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독자는 그 누구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저 씁쓸한 현실에 대해 탓하고 그에 대한 안타까움만을 표출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을 읽기
전 나는 청년실업을 다룬 『백수알바 내 집 장만기』를 먼저 만났다. 그래서 자연스레 두 작품을 비교하게 되었다. 경제 불황과 실업이라는
공통된 소재의 작품들이지만 『마루 밑 남자』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희망적인 메시지가
차지할 자리는 크게 줄어든다. 그러나 “가뭄에 단비”라는 말처럼 ‘슈샤인 갱’에서 보여준 조그만 희망은 읽는 이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마루 밑 남자를 선택한 이유는 오쿠다 히데오의 기발함을 만날 수 있다는 광고 때문이었다. 그 광고처럼 몇몇
이야기에서 오쿠다 히데오와 닮아있는 기발함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발함보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불황 속에서 겪어야만 하는
직장인들의 현실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잘 버무려놓은 점이다. 그리고 이는 이 작품의 매력으로 반짝거리고 있다. 또한 초반의 단편들이 우울한
결말을 향해가는 것에 대비되어 마지막 단편인 ‘슈샤인 갱’은 상당히 희망적인 결말로 마무리되어있음이 인상 깊다. 독자로 하여금 시종일관
막막한 어둠을 보여주며 지치게 만들 즈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작가의 배려이다. 이는 독자의 답답하고 씁쓸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드는 역할로 작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