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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지 못하는 마음, 우리는 왜 각자의 급류에 침수되는가
Book name
저자/역자
정대건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22-12-22
독서시작일
2026년 05월 20일
독서종료일
2026년 06월 01일
서평작성자
최*훈

Contents

나는 물이 무섭다. 일곱 살의 여름이었나, 유치원 수영장에서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숨이 끊어질 뻔한 적이 있다. 사방을 가득 채우던 먹먹한 물소리, 허우적거릴수록 몸을 아래로 끌어당기던 그 짧고도 아득했던 공포는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뇌리에 각인됐다. 그날 이후 물이라는 존재와 불편한 동거를 이어온 지도 어느덧 22년이다. 22년 동안 매일 아침 맞이하는 샤워기의 거센 물줄기에서, 혹은 불시에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을 국경처럼 마주한다. 불쑥불쑥 명치를 치고 올라오는 그 시절 수영장의 차가운 기억을 달래는 일은, 이제 내 삶의 서글픈 숙명이 되어버렸다.

그날의 기억은 이미 내 삶의 단단한 일부다. 만약 내 마음에 이 지독한 공포를 통제할 아주 작은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면, 나는 거대한 수조나 푸른 바다 같은 세상의 아름다운 이면을 영영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코앞에 밀려드는 물줄기 때문에 눈앞의 일상이 온통 흐려지는 삶이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 시각이나 감각의 문제뿐일까. 과거의 조각난 기억에 발목이 잡혀 미래를 상실한 삶, 마음속에 차오르는 슬픔에 휩쓸려 오늘이라는 현실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삶 역시 잔인하기는 매한가지다. 정대건 작가의 장편소설 <급류>(민음사, 2022)는 바로 이 지점, 과거의 비극에 갇혀 현재를 빼앗겨버린 인간들이 삶의 거친 물살을 어떻게 통과해내는지를 ‘급류’라는 서늘한 상징을 통해 펼쳐 보인다.

고통의 무한루프, 자아의 고립

소설의 배경은 ‘진평’이라는 물가 마을이다. 주인공 도담의 아버지 창석은 인명구조요원인데, 이 마을로 이사 온 해솔의 어머니 미정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이를 목격한 아이들의 시선 끝에서, 두 어른은 폭우 속 거센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다.

이날의 급류는 아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킨다. 소설 속 ‘급류’는 중의적이다. 인물들의 생명을 앗아간 물리적인 물줄기임과 동시에, 사고 이후 그들의 일상을 침범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그 자체다. 7살 수영장의 물줄기가 여전히 내 숨을 막히게 하듯, 트라우마는 고여 있는 웅덩이가 아니다. 끊임없이 현재를 습격하는 급류처럼 인물들을 압박한다.

사고 이후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다 재회한 도담과 해솔은 서로를 치유하는 듯하다가도 다시 상처를 입힌다. 이들의 위태로운 모습에서 나는 PTSD를 연구한 한 논문의 제목을 떠올렸다. ‘PTSD를 겪는 소방공무원 여성 배우자의 경험 과정: 고통의 무한루프로부터 회복의 여정'(DBPIA)이 그것이다.

논문 속 배우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불안 속에서 고통이 반복되는 궤도에 갇히듯, 소설 속 인물들 역시 부모의 잘못과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이중의 굴레 속에서 죄책감의 무한루프에 빠진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착취하는 구조 속에서, 개개인의 자아는 완전히 고립되고 파괴되어 간다.

근시안적인 도피와 직면이라는 용기

상처 입은 인간은 흔히 근시안적인 선택을 하곤 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닫거나, 아예 물이라는 존재 자체를 삶에서 지워버리려 애쓴다. 기업과 사회가 당장의 이윤을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착취하듯, 우리 역시 마음의 고통을 임시방편으로 봉합한 채 오늘 하루만 간신히 도망치며 살아내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 해솔은 다른 길을 택한다. 어린 시절 물에 빠져 도담에게 구조되었던 나약한 소년은, 훗날 도담의 아버지와 같은 ‘응급 구조대원’이 된다. 그리고 다시 거친 물줄기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을 구한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매우 정교한 ‘행동적 직면’이다. 어머니를 죽게 한 공포의 대상이자 트라우마 자체였던 ‘급류’를 회피하는 대신, 그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타인을 구원하는 존재로 자신의 정체성을 승화시킨 것이다. 7살의 내가 수영장 물줄기를 무서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 다른 이를 건져 올리는 일과 같다. 논문 속 주인공들이 마침내 고통의 루프를 깨고 나와 자신들의 삶을 주도적으로 재구성하는 회복의 여정을 시작하듯, 해솔 역시 비극의 수동적 피해자에서 능동적인 구원자로 거듭난다.

킨츠기, 흉터를 받아들이는 자세

미래의 전망이 늘 장밋빛일 수는 없다. 이미 부서진 과거를, 유치원 수영장에서 숨이 넘어갔던 그 기억을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도 없다. 에디스 시로는 그의 저서 <극복의 심리학>에서 아주 흥미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깨진 도자기 조각을 숨기지 않고, 그 틈을 오히려 금이나 은으로 메워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전통 ‘킨츠기(Kintsugi)’ 기법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급류를 이겨내는 방식은 바로 이 킨츠기 철학과 닮아 있다. 도담과 해솔은 부모의 비극적인 사고를 삶에서 완전히 삭제하지 못한다. 마음의 금 간 자리는 그대로 남는다. 대신 그들은 그 아픈 흉터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상처의 선을 따라 새로운 서사를 써 내려갈 때, 비로소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성장이 가능해진다. 깨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부서진 파편들을 금빛으로 이어 붙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인생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물속에 빠진 사람처럼 내 마음의 시야를 흐린 채, 이 고통과 트라우마는 원래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자조하며 가라앉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를 위협하는 삶의 급류를 똑바로 응시하고, 그 상처의 균열 속에 성장의 숨결을 불어넣을 용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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