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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5020 손지훈 소통의 글쓰기 서평
저자/역자
정세랑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20-09-11
독서시작일
2026년 05월 19일
독서종료일
2026년 06월 03일
서평작성자
손*훈

Contents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은 남들은 볼 수 없는 ‘젤리’를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 안은영이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을 들고, 이 기묘하고 불가사의한 존재들과 맞서는 일상을 그려낸 판타지 소설입니다. 각기 다른 인물과 사건을 따라 총 열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평범한 학교 소설이려니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곧 ‘젤리’라는 괴상하고 낯선 생명체가 나타나면서, ‘작가가 이 세계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뭘까?’ 하는 궁금증이 마음 한 켠에서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안은영은 겉보기엔 평범한 보건교사이지만,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보고 퇴치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능력을 쓰지만, 그런 행동 뒤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피로와 고독이 따라붙는, 짠한 주인공입니다. 학교 설립자의 손자이자 한문 교사인 홍인표는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을 지녔고, 그 에너지로 은영에게 힘을 불어넣어줍니다. 동시에 젤리로부터 자신과 은영을 지킬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죠. 그는 은영의 유일한 동료이자 파트너라고 할 만합니다. 이 밖에도 지련의 죽음 이후 거대한 문어 젤리와 얽혀 위험에 빠지는 혜민, 홍인표를 남몰래 마음에 품다가 젤리 늪에 갇혀버리는 성아, 젤리 사건에 휘말려드는 영어 교사 매켄지 등 각양각색 인물들이 안은영과 얽히며 기묘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 소설에서 ‘젤리’는 인간의 욕망과 감정, 고통, 트라우마 등이 형태를 가진 채 세상에 나타난 것들입니다. 해롭지 않은 젤리도 많지만,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거나 위협이 되기도 하죠. 안은영은 남들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녀에게 보이는 것은 죽은 존재와 산 존재들이 흘려보내는 미세하고 흐릿한 미색 젤리들의 응집체, 일종의 엑토플라즘입니다. 은영은 자신이 장난감 무지개 칼과 비비탄 총에 기를 불어넣으면, 젤리와 힘겨운 사투를 벌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 무기들을 늘 곁에 두게 되죠. 사립 M고에는 음산하고 사악한 기운이 교묘하게 도사리고 있고, 통굽 슬리퍼에 흰 가운, 무지개 칼과 비비탄 총을 품은 보건교사 안은영은 보이지 않는 악과 남모르게 싸우며, 여린 존재들을 세심히 지켜나갑니다.

 

정세랑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우주 어딘가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고,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일상은 어떻게 펼쳐질까?”라는 물음에서 이 소설이 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이 신기한 상상력이 작가님의 순수한 동심에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또, 작가님이 보건교사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가 ‘학교에서 아픈 곳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사람’이라 말씀하셨다는 점, 그리고 일반적인 선생님이 아닌 판타지적 요소에서 현실적인 인물로 보건교사를 그려낸 시선에서 작가님의 섬세하고 독특한 관점이 묻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고민해보면, 제가 이 작품을 읽고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세상에는 완전히 해결되는 문제가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태도입니다. 소설 속 젤리들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다시 나타납니다. 이 모습은 마치 우리 현실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한 번에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닮았습니다. 결국 우리 역시 이런 문제들 앞에서 하루하루 대응하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문제의 종결보다는 끝없이 반복되는 삶의 장애물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메시지는 특히 안은영이 “어차피 내가 아니면 누가 해?”라며 스스로를 다잡는 장면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대사에서 저는 외로운 책임감과 피할 수 없는 일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면모를 느꼈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다른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으면서도 작가 특유의 문체와 스타일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에서는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통해 인간관계와 정체성을 섬세하게 탐구했고,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젤리’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매개로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봅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을 작가만의 상상력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능력이 참 인상적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제작된 『보건교사 안은영』을 시청해보니, 소설과 드라마가 꽤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영상화된 작품은 상상의 여지보다 시각적 효과가 훨씬 크기 때문에 더 현실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설이 전체적으로 밝고 유쾌한 판타지에 가깝다면, 드라마는 한결 무겁고 진지하게 연출되었습니다. 또, 소설은 각 이야기마다 독립적인 에피소드와 등장인물의 심리가 굉장히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드라마는 연속적인 구성과 화면 연출을 통해 배경이나 분위기에 더 집중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같은 원작이라도 매체에 따라 분위기와 전달 방식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보건교사 안은영』이 보이지 않는 ‘젤리’라는 비현실적 존재를 통해, 현실의 문제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단단한 진실을 경쾌하게 풀어낸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은영이 끈질기게 젤리를 없애려 애쓰는 모습은, 삶의 문제 앞에서 완벽한 해답보다 꾸준히 나아가려는 의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안은영의 고군분투에서 용기와 위로를 얻었고, 동시에 우리 주변의 ‘젤리’는 무엇일지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끝나지 않는 싸움 속에서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응원 같은 작품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태도와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삶의 가치를 유쾌하게 일깨워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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