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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생애를 걸어본 적이 있는가
Book name
저자/역자
양귀자
출판사명
쓰다
출판년도
2013-04-01
독서시작일
2026년 04월 23일
독서종료일
2026년 06월 02일
서평작성자
김*현

Contents

 

양귀자의 「모순」은 흔히 행복과 불행의 상대성을 다루는 작품으로 읽힌다. 같은 날 태어났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두 자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안진진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어떤 삶이 더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작품을 읽고 난 뒤 남은 질문은 달랐다. 「모순」은 행복의 조건을 말하는 소설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진심으로 참여하고 있는가를 묻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오늘날 쉬었음 청년 현상을 바라보는 데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오늘날 쉬었음 청년은 흔히 게으른 사람, 도전을 포기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이들의 경험은 훨씬 복잡한 상황 속에 놓여있다. 그들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 반복된 실패, 이로 인한 자기효능감의 저하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이들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뒤처지고 있으며, 부모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불안을 지속적으로 경험한다. 또한 많은 경우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없다고 느끼는 상태”에 가깝다. 나는 이러한 상태를 단순한 무직 상태가 아닌 실존적 위기라고 판단한다. 실존주의는 인간이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로 본다. 인간은 자유롭지만, 그 자유 때문에 불안한 역설을 지니고 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택을 미룰 수도 없다. 선택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모순」의 안진진 역시 바로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녀는 어머니와 이모라는 두 개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한다. 가난하지만 살아 있는 어머니와 풍요롭지만 공허한 이모의 삶은 진진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가. 어떤 선택이 더 옳은 선택인가. 그러나 작품은 끝내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많은 독자들은 이모의 죽음을 단순한 비극으로 읽는다. 하지만 나는 이모의 죽음이 「모순」의 핵심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이모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이다. 경제적 풍요, 안정된 가정 등 부족함 없는 생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지루해서 죽을 것 같아. (중략) 내 삶은 무덤처럼 평온했지만, 그 안에는 내가 없었어.”

 

이 문장은 단순한 우울감의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상실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실존적인 공허를 보여준다. 이모에게는 결과가 있지만 ‘과정’이 없었다. 안정은 있었지만 진정 자신을 위한 ‘투쟁’은 없었다. 사회가 부러워하는 조건은 모두 갖추었지만, 정작 그녀의 삶 속에는 ‘자기 자신’이 없었다. 반대로 진진의 어머니는 불행한 삶을 사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 바닥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고 끊임없이 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있다. 그녀는 매 순간 닥쳐오는 불행에 맞서 선택하고 투쟁하는 존재이며 그 과정에서 강렬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여기서 다시 작품의 제목인 「모순」을 떠올리게 된다. 많은 독자는 「모순」을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의 대비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품이 보여주는 모순은 훨씬 근본적인 것에 있다. 인간은 안정을 원하면서도 자유를 갈망한다. 또한 삶을 선택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선택에 따른 전적인 책임은 두려워한다. 이런 모순은 작품 속 인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쉬었음 청년들 역시 일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실패를 두려워하고, 삶의 변화를 원하면서도 새로운 선택 앞에서는 망설이고 움츠러든다. 결국 「모순」이 말하는 모순은 특정 삶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해야 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쉬었음 청년과 이모 사이에 의외의 공통점이 있다고 판단한다. 물론 둘의 현실은 다르다. 그러나 둘 모두 자신의 삶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점에서는 크게 닮아있다. 이모는 성공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고, 쉬었음 청년은 불안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둘은 방향은 다르지만 같은 결과를 가진다.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할 ‘나’라는 주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특히 청년 쉼 경험에 따른 해석학적 현상학 연구에 따르면 쉬었음 청년들의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단순히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더 이상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경험한다. 또한 자신의 모습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는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상태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안진진의 마지막 선택을 중요하게 본다. 많은 독자들은 그녀가 나영규를 선택한 것을 두고 현실과의 타협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타협이 아닌 선택이라고 해석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주체이며, 사랑을 선택하든 안정성을 선택하든, 그 결정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면 그것은 진정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 초반 진진의 다짐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처럼 읽힌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이 문장은 「모순」의 핵심이다. 인간은 불안을 제거한 뒤에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불안을 안고 선택하는 존재다. 해당 문장에서 진진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열의와 불안일 것이다. 현재 쉬었음 청년들이 겪는 문제 역시 단순한 취업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어디에 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자기 계발이나 성공 신화가 아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질문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싶은가?”

 

작품 「모순」에서는 오늘날 청년의 모습에 직접적으로 대입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작품은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깊이 탐구하지만, 오늘날 청년들이 직면한 주거 문제,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과도한 경쟁 구조와 같은 구조적 문제까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쉬었음 청년 문제를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환원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소설을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의 차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에 내 생애를 걸어본 적이 있는가.”

 

「모순」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 자체를 피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나를 포함해서 불안과 무기력을 안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선택을 두려워 말고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그저 ‘나’를 위해 살아내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중요하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서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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