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 사회의 화려함 속에 무너져 가는 인간의 꿈을 그린 작품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부와 사랑을 모두 손에 넣고자 했던, 책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제이 개츠비’가 있다. 개츠비는 과거의 연인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부를 쌓고 사치스러운 파티를 열며 이상을 좇지만,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고 만다. 이 짧은 줄거리 속에는 당시 미국 사회가 추구하던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이 응축되어 있다.
아메리칸드림의 왜곡과 개츠비의 파멸
소설의 핵심 주제는 명백히 ‘아메리칸드림의 허상과 붕괴’ 이다. 아메리칸드림은 미국에서 노력과 기회를 통해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한다. 그러나 피츠제럴드는 개츠비의 일생을 통해 이 꿈이 부와 신분이라는 견고한 장벽 앞에서 얼마나 왜곡되고 타락했는지를 보여준다. 개츠비는 부를 쌓아 데이지의 사랑을 되찾는 수단으로 삼지만, 그 과정에서 축적된 부 자체가 결국 개츠비를 파멸로 이끈다.
데이지는 개츠비의 순수한 꿈이 투영된 대상이지만, 그녀는 부와 사회적 지위라는 현실의 가치에 갇힌 인물이다. 개츠비가 아무리 화려한 물질로 자신을 포장해도, 데이지와 그녀가 속한 구세대 부유층의 세계는 “벼락부자”인 개츠비에게 결코 진정한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개츠비의 비극적인 죽음은 물질적 성공이 인간의 본질적인 결핍을 채워줄 수 없으며,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조차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이길 수 없음을 뜻한다.
영원한 꿈을 향한 인간의 모순적 아름다움
피츠제럴드는 독자들에게 “꿈이 현실을 이길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개츠비의 삶은 부와 사랑, 성공을 좇던 찬란한 빛이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잃은 허망함이었다. 그의 이상은 현실과 맞닿은 순간 산산이 부서지며, 독자들에게 돈과 명예가 진정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냉정한 진실을 깨닫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위대한’ 개츠비라는 역설적인 제목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개츠비가 부를 쌓는 과정의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순수한 이상과 낭만을 향해 헌신적으로 나아갔다는 점에 있다. 그는 과거의 사랑을 되찾으려는 ‘단 하나의 꿈“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이는 냉소적인 1920년대 사회 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순수성이자, 비록 허황될지라도 인간이 영원히 꿈을 좇는 모순적인 아름다움을 대변한다.
소설의 마지막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는 이 서평을 쓰는 이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준다. 이 문장은 현실이 아무리 냉정하고 꿈이 좌절될지라도, 인간은 본질적으로 희망과 꿈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내포한다.
개츠비의 꿈은 허망하게 끝났지만, 그 꿈을 꾸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루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꿈을 꾸는 이 모순된 행위는 곧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본능적인 원동력이 된다. 피츠제럴드는 개츠비의 비극을 통해 아메리칸드림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가진 영원한 낭만과 이상이라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이야기한다. 이루기 힘들단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꿈을 꾸고 한발한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