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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페인트\'로 보는 가족 관계의 재정립
Book name
저자/역자
이희영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19-11-29
독서시작일
2025년 11월 29일
독서종료일
2025년 12월 06일
서평작성자
양*람

Contents

부모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가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주는 책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존재는 부모님이며, 아우르는 칭호는 가족이다. 가족은 매우 애매한 존재다. 개인을 개인보다 쉽게 간섭하고 하고, 개인과 개인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혹은, 마음대로 단절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가장 가까운 존재이면서 가장 먼 그들은 나에게 어떤 존재일지, 이 책은 애매한 관계를 한 발짝 멀리 바라보며 고민할 수 있다.

자식의 자율성과 부모의 욕심이 문제가 되는 요즘, 알을 품은 닭처럼 밖을 바라볼 수도 없이 감춰둔 아이는 스스로 날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간다. 책은 이와 반대로 애초에 품어진 적이 없는 병아리의 상황을 연출하여 정반대의 그들에게서 가족의 의미를 재정의하고자 한다.

 

부모를 선택하는 자유

 

이 책 속의 국가는 센터를 설립하여 부모가 없는 아이를 키워주는 ‘양육 공동체’가 실현된 미래 사회를 그린다. 청소년이 부모를 직접 면접 본 뒤 선택하는 구조이다.

처음엔 입양과 거의 비슷한 조건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부모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관점이 뒤집힌 것을 알 수 있다. 입양은 부모가 될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을 가진 아이를 선별한다. 그들은 애정 속에서 자랄 수도 있고, 필요 속에서 자랄 수도 있지만, 센터의 아이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점이 신선했다.

태생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에 책임을 회피할 수 있고, 나에게 온전한 책임을 따질 수 없기 때문에 삶이 힘들 때 숨을 수 있는 곳이 된다. 그러나 센터의 아이들은 운명을 직접 선택함으로 가질 수많은 부담감이 크게 느껴졌다. 또한, 부모를 선택하지 못했을 때의 낙인으로 인해 적절한 상대를 찾아 적당히 살아가려는 무기력함은 아이들의 순수함에 때를 묻히는 사회의 압박처럼 보였다.

 

또한, 가족을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센터를 찾는 부모 후보들이 국가의 지원금을 노골적으로 바라는 모습이나 혈연관계의 가족도 허울만 좋은 뿐, 결코 우월하지 않고 불행할 권리를 가진 모습, 부모를 결정하는 것이 오히려 권력이라는 어른들의 말로 알 수 있다.

센터라는 장소는 가족이라는 틀에 매달려 개인의 인생보다 가족을 형성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버릴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한다. 하지만 가족은 절대적으로 행복한 것이 아님을 말하기 때문에 상황을 간파하고 진정으로 가족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와 가족이란 무엇인지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제누 301은 끝내 가족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좋은 부모 후보를 만났지만 제누 301은 좋은 부모에게 어울리는 좋은 자식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생각한다. 맹목적으로 좋은 부모만을 쫓지 않고 센터의 아이라는 본인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숨지 않기로 결심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모습이 용감하고 멋있지만 앞으로 닥칠 고난들이 어린 제누 301에게 얼마나 큰 파도로 몰려올지 알 수 없었다. 이는 가진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좋은 것을 바라는 자신의 오만을 발견하게 되었다.

 

관계의 실패와 정서적 결핍을 채우려는 부모들

 

자신의 오만을 발견하고 잠시 멈춰 선 제누 301의 태도는, 수많은 면접자들이 사실은 아이가 아닌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센터를 찾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과 연결된다. 면접에 참여한 대부분의 부모 후보들은 완벽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을 갖추었지만, 제누의 날카로운 질문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그들은 아이를 통해 채우지 못한 꿈을 이루려 하고,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완벽한 가족’을 구성했다는 인증을 받으려 했다.

제누는 NC 센터라는 시스템 아래 자라 ‘혈연의 신화’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외형적인 조건보다 관계의 본질, 즉 솔직함과 진정성을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그가 유일하게 마음이 끌렸던 서하나, 이해오름 부부는 오히려 준비가 부족하고 인간적인 허점이 많았지만,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진솔한 마음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처럼 소설은 ‘부모 자격’이 이미 완성된 자들의 목록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배우고 변화하려는 미완성의 노력에 있음을 역설한다.

 

미선택의 용기와 되어가는가족의 의미

 

제누가 최종적으로 선택을 유보하고 센터에 남기로 한 결정은 도피가 아닌 가장 용감한 선택이었다. 그는 완벽한 부모를 찾아 자신의 삶을 맡기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가족의 모습을 깨닫고 스스로에게 온전한 책임을 지기로 한다.이 결정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어도 자신이 온전한 한 명의 인격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자아 정체성의 확립을 의미한다.

결국 페인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가족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색을 덧입히고 채워나가는 진행형의 페인트칠이라는 것이다. 가족 관계는 혈연이나 제도가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며 어른이 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진정한 가족이 시작된다. 소설은 청소년에게 ‘부모를 고를 권리’를 부여하는 파격적인 상상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가족 관계를 만들어 가는 주체자로서의 삶을 촉구한다. 당신의 삶이라는 캔버스에는 지금 어떤 색깔의 ‘페인트’가 칠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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