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주인은 누구인가. 인간은 커다란 지구에 살고 있다. 우주적으로 보면 먼지보다 작은 지구이지만, 그 먼지보다 작은 우리에겐 너무나 큰 세상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것들이 인간에 의해 돌아가고, 설계되고, 학습되고 있다. 이러한 주변 환경은 우리가 많은 것을 간과하게 한다.
장 뤽 포르케의 책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은 이러한 인간중심적 세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시작은 많은 멸종위기 동물들 중, 인간이 보호해 줄 하나의 종을 선택하는 재판이 열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재판에 참석한 수리부엉이, 담비, 갯지렁이, 유럽칼새, 멧돼지, 들북살모사, 붉은제독나비, 여우가 자신들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다. 동물들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인간에게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 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발언이 끝나고 동물들이 하나 둘 재판에 등장한다. 앞서 말한 동물들 말고도 다양한 동물들이 재판장에 들어와, 우리 모두 영원할 수 없는 지구에 잠깐 스쳐가는 존재들이라 이야기 한다. 세상에는 인간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다양한 생물들이 있으며 그 모두가 인간에게 삶을 허락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일깨워준다. 원래 자신들은 말을 할 수 없지만 잠시 그 힘을 빌렸고, 이제 다시 침묵으로 돌아갈테니 이제 인간들이 대답할 차례라고 말하며 책은 끝이 난다.
동물들이 직접 이야기하며 전개되는 우화 형식은 읽는 인간으로 하여금 잠시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있어 보이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자연 앞에서 어떠한 생명체에도 우위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착각하고 있다. 동물, 곤충, 자연 속 이름 모를 많은 생명체보다 인간이 가장 강하다고. 그래서 책은 어리석은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동물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우화 전개 방식은 환경문제를 직접 말로 듣지 못하면 전혀 관심이 없는, 잘 안 보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너무나도 일차원적인 우리 사회에 맞춰주는 배려이다.
“진화를 거치며 세운 대성당이요. 아주 오래전부터 들인 노동,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 세기를 이어 가며 들인 노동의 결실이죠. 저는 그런 대성당입니다. 우리 모두가 대성당이고요. 모두가 찾아오고 감탄하며, 찬찬히 뜯어보고 보존하는 대성당이죠. 그런데도 당신들은 우리를 쳐다보지 않고 무시합니다.”
책에서 동물들은 또 친절하게 우리가 잘 아는 건축물에 비유하여 자신들 삶의 역사를 알려준다. 우리는 학교에서 역사를 배운다. 그럴 때면 원시 시대부터 현대까지, 우리의 진화와 그 진화의 산물들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조그마한 뇌에서 나오는 그 생각들이 만들어낸 우리 주변 모든 것들에 감탄한다. 하지만 지구에서 오직 인간만이 이런 숭고한 역사를 가졌을까? 절대 아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을 위해 벤 나무, 그 나무에서 살아가는 많은 동물과 곤충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 나무 한 그루, 곤충, 동물들과 연결되어 있는 생태계의 모든 것들은 역사가 있다. 그 경이로운 진화의 산물들을, 우리도 마찬가지일 뿐인데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냥 이용한다. 베고 부수고 독한 약품을 써가며 우리는 그 안의 거대한 역사를 짓밟는 중인 것이다. 친절한 동물의 비유 덕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지구 상 모든 생명체들이 놀라운 진화의 역사를 가진 것들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 자주 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인간에게 판결을 내린다면 이렇게 되겠죠. 멸종이라는 고통을 겪으라고 말입니다. 당신들이 사라졌다면, 인간 종만 딱 사라진다면, 다른 모든 생물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솔깃한 판결이라는 걸 인정하시죠.”
이 곳은 인간에게 결정권이 주어진 재판이 진행 중이다. 동물들이 자신들을 선택해주길 바라기에 매우 순종적인 태도로 이야기할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위 인용과 같이 동물들은 전혀 우리 입맛에 맞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동물의 입장에선 인간도 동일한 생명체일 뿐이고, 잘못한 게 없는데 눈치 볼 필요가 전혀 없다.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는가? 이 또한 우리 마음 깊숙이 내재된 우월감이라 생각한다. 하는 행동을 보면 오직 인간만이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그만큼 우월한가? 위 인용 속 동물의 말을 상상해보면 할 말이 사라진다. 생태계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꿀벌이 사라지면 식물이 사라지고, 그 식물을 먹고 자라는 초식동물이 사라지니 육식동물 또한 사라질 것이다. 이 뿐 아니라 정말 다양한 생명체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 말고 다른 생명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들을 파괴하기만 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만 살아간다. 지구를 뒤덮은 많은 인공물, 인간이 사라지면 그것들은 관리가 되지 않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고, 지구는 녹지를 되찾을 것이다. 그럼 생태계는 빠른 속도로 회복하지 않을까? 뼈 있는 동물의 한마디는 우리의 모든 이기심을 잠재운다.
책에는 부제목이 있다. 지구공동생활자를 위한 짧은 우화: 동물의 존재 이유를 묻는 우아한 공방. 책을 읽기 전, 부제목으로 내용을 유추해보고는 한다. 그리고 다 읽은 후 책을 덮으면 제목이 다시 보인다. ‘지구공동생활자’ 라는 이 단어는 책의 내용을 정말 집약적으로 잘 담고 있다. 책을 읽는 우리는 인간이라는 종이다. 근데 사실 그 뿐이다. 지구 속 생태계에서 과학적 기준에 따라 나뉜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일 뿐이다. 누가 지구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두가 잠시 살다가 떠나는 곳이다. 그 잠깐의 시간을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모습은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고, 마치 영원할 것처럼,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지구 온난화와 그 결과인 환경파괴가 말해주고 있다.
이제 진짜 인간이 대답할 차례이다. 동물들은 우리에게 차례를 넘기고 떠났다. 영영 모습을 감춰버린 멸종 동물들도 있고, 멸종이 임박한 동물들도 많다. 생태계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인간이기에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나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이는 너무 편협한 사고이며 세상을 넓게 보아야 한다. 정말 찰나의 시간을 살다 가는 모두인데, 그 속에서 우리가 가장 강하다는 오만함은 인간을 넘어 지구 전체를 물들이는 독이다. 인간은 하루빨리 동물들에게 대답해야 한다. 남은 시간이 정말 부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