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시작으로부터
2420055 스마트그린자원학과 이시은
과거의 ‘동물’은 단지 기능적 존재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동물을 일을 돕는 도구나 식량 자원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소는 밭을 갈기 위해, 말은 짐을 실어 나르는 용도였다. 심지어 사람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개조차 집을 지키는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날 동물은 더 이상 단순한 자원이 아니다. 우리는 ‘애완동물’이라는 용어 대신 수평적인 ‘반려동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누군가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동물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 이는 동물이 인간의 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군가에겐 반려동물은 단순히 ‘소유’하거나 ‘기르는 존재’를 넘어서 함께 교감하고 성장하는 존재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 그 순간을 함께 나누고, 슬픈 일이 있을 때 기댈 수 있는 힘이 되어주며, 이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공유한다. 그렇기에 반려동물은 이제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뗄 수 없는 ‘가족’이 된다.
이렇게 동물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며 반려동물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 기업의 통계에 따르면 약 4가구 중 1가구 이상이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한다. 2024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 양육 가구 중 약 3/4이 반려견을 키운다고 말했다. 이는 반려동물 중에서도 개가 특히 대중적이며,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한다.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은 ‘개’는 누군가에겐 가족이자 동반자로 또 다른 이에게는 돈벌이의 수단으로서 상반된 위치에 놓여있다.
하재영 작가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에서는 ‘개’를 가족으로 여기면서도 음식으로 소비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 작가는 번식장, 경매장, 개 농장, 도살장이라는 최악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개들의 모습을 작가와 개개인의 시선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며 우리가 개들이 어떤 현실 속에 놓여있는지를 제대로 살펴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살펴보려 하지 않았던 ‘개’의 처지를 다시 바라보도록 하며 이러한 문제 인식은 ‘개’에 그치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동물과 인간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사람들은 어떤 경로로 반려동물을 맞이하게 될까? 지나가다 한 번쯤 거리에 투명한 유리창 너머에 놓인 어린 강아지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조그마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유리창 너머의 공간 즉, 펫샵에서 자신의 가족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면, 펫샵에서 가족을 맞이한 사람들은 그들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강아지 공장’. 법적 명칭은 번식장으로 돈벌이를 목적으로 개를 대규모 교배, 사육하는 모습이 마치 물건을 찍어내는 공장과 유사하다고 하여 붙여진 용어이다. 펫샵에서 팔리는 강아지의 99%는 이곳에서 나온다. “나는 개들의 상태를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철창은 온통 녹슬어 있었고 바닥면은 개들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가운데가 움푹 꺼져있었다. 이 위태로운 뻥개장 하나에 많게는 일고여덟마리가 들어가 있었다.” “개들은 항문으로 시뻘건 살덩어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회음부 탈장으로 복부 내장의 일부가 항문을 통해 빠져나오는 증상이었다.” “배설물과 썩은 음식물이 뒤섞여 풍기는 악취로 숨쉬기가 힘들었다.” 책에서 작가가 표현하는 번식장의 현실이다. 이곳의 번식견들은 평생 아이만 만들다 죽는다. 낳은 아이는 사람들이 어린 강아지만 원한다는 이유로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빼앗기며, 더 이상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개들은 경매장으로 넘어가 도축업자에게 값싸게 팔려 보신탕, 개소주의 재료가 된다. 결국 죽음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수요가 있기 때문에 생산이 있다.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만들어지고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쉽게 버려진다. 결국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개를 입양하지 않으면 모든 생명이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는 말한다. “개는 불쌍하고 소, 돼지, 닭은 안 불쌍하냐?” 이것은 잘못된 평준화이다. 모든 동물을 똑같이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평등인가. 저들이 말하는 ‘평등’이 모든 동물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그것은 아무 가치도 없다. 작가가 ‘개’를 주제로 한 이유도 단순히 개의 처지 개선이 아니라 우리와 가장 친근한 ‘개’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개를 시작점으로 모든 생명이 옳은 평등의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또 다른 메시지이다. 동물에 대한 이야기엔 항상 ‘그래도 사람이 먼저 아니냐’는 질문이 따라온다. 이 말 속에는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동물권까지 챙겨야 하냐는 뜻이 담겨있다. 한 사회 안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와 동물을 존중하는 태도는 동떨어져 있지 않다. 마하트마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은 동물 권리 보호와 동물 복지에 대한 철저한 법과 정책이 만들어져 있다. 이는 곧 인간복지와도 연결된다. 사회에서 최약자인 ‘동물’이 존중받는다면 당연시 모든 인간도 존중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인권 수준이 높고 권리와 복지가 보장 되어있는 나라들이 동물권과 동물복지를 실현하고 있는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동물을 수단으로서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인간에게까지 이어진다. 매년 수많은 노동자들이 추락사, 과로사 등으로 목숨을 잃는다. 이것이 과연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인가. 아직도 사람이 먼저인가? 내가 존중받기 위해선 남을 존중해야 한다. 모든 인간들이 존중받기 위해선 모든 동물들이 존중 받아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유독 동물을 좋아했다. 남들이 동물원 속 동물들을 보며 즐거워할 때 나는 그것들을 보며 슬퍼했고, 다큐 속 돼지들이 생매장 당하는 것을 보며 일주일 동안 고기를 안 먹기도 했다. 하지만 커가면서 그 마음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동물들이 희생되어 살아가는 나의 생활을 당연시 여기게 됐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죄책감이 들었다. 한때 수의사를 꿈꾸던 내가 이제는 생명의 희생이 무던해지는 그 과정이 싫었다. 이 책은 나에게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 ‘앞으로는 무얼 할 수 있을까?’는 질문을 남겼다. 나는 다른 생명의 희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그 희생이 불필요하게 잔인하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바라지는 않는다. 동물의 희생 없이 우리의 삶을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그 희생이 더 이상 불필요하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