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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을 읽고
저자/역자
앤드루 포터
출판사명
문학동네
출판년도
2019-05-13
독서시작일
2025년 10월 20일
독서종료일
2025년 11월 03일
서평작성자
하*율

Contents

나는 단편소설은 이야기가 짧아 몰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장편소설을 더 선호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책을 읽을 시간도 줄어들고, 장편소설을 읽다보면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 박정민 배우가 추천한 단편소설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총 열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는 잔잔하다. 그러나 그 잔잔함 속에서 섬세하게 느껴지는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은 나를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깊었던 작품은 <아술>이었다. 이 소설은 교환학생을 집으로 받아들인 부부의 시선으로 전개되며 주인공인 ‘나’의 호스트로서의 책임과 개인적인 감정이 충돌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소설은 교환학생인 ‘아술’이 매주 금요일 밤에 자신의 연인을 만날 수 있도록 차를 태워 데려다주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부분의 내용을 책에서 인용해보자면

 “오늘 밤 나는 우리 집에 머무는 교환학생 아술을 도시 반대편에 있는 그의 연인의 집까지 데려다준다. 아술은 지난 석 달 동안 라몬이라는 소년을 만나고 있다. 솔직히 그 관계가 달갑지만은 않지만, 나는 매주 금요일 밤 그를 차에 태워 도시를 가로질러 간다.” 이다. 

이 장면에서는 매주 일어나는 일상적인 장면을 묘사하지만 “솔직히 그 관계가 달갑지만은 않다” 라는 말을 통해 표면적으로 ‘나’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처음에는 특별할 것 없이 그저 불편한 감정을 표현한 문장으로 보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저 말 한 마디에 ‘나’의 외로움과 질투, 불편함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러한 형식은 앤드루 포터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나타난다. 

먼저 <구멍>에서 어린 화자인 ‘나’는 이웃 소년과 장난을 치다 우연한 사고를 겪는다. 그 사고는 가족과 동네에 큰 상처를 남기고, 주인공은 그 사건이 남긴 “구멍” 같은 죄책감을 평생 품고 자라난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떠올리게 한다. 이 속에서 느끼는 ‘나’의 심리와 기억, 그리고 생각들은 섬세하게 화자에게 전달된다. 

두번째로 <코요태> 에서 대학생 주인공은 대학 시절 만난 여자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불안과 지나친 집착을 느낀다. 주변에서 코요테가 나타난다는 소문은 이야기 전체를 감도는 위협의 상징처럼 등장한다. 관계가 끝나며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에 있던 폭력성과 공포를 마주하게 된다.

세번째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에서 대학생 ‘나’는 카리스마 있지만 불안정한 물리학 교수에게 이끌린다. 교수는 천재적이지만 삶이 무너져가는 인물이다. 주인공은 그에게서 이상과 현실, 사랑과 안정 사이의 갈등을 본다. 결국 주인공은 교수의 몰락을 목격하며, 그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선택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를 통해 나는 인간의 삶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그 비슷한 삶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선택’ 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네번째로 <강가의 개>에서 주인공은 어린 시절 강 근처에서 어떤 개 같은 존재를 보았다. 이 애매한 기억은 공포와 호기심이 뒤섞인 채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후 그 기억을 되새기며, 자신이 본 것이 실제였는지, 혹은 어린 시절의 불안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는지 질문한다. 기억의 모호함과 트라우마를 다룬다.

다섯번째로 <외출> 에서는 가족과 함께 떠난 작은 외출에서, 십대 주인공은 자신이 가족으로부터도 멀어지고 세상 속에서 혼란스러운 위치에 있음을 느낀다. 어른이 되기 전의 불안, 감정의 폭발, 그리고 가족 간의 거리감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여섯번째로 <머킨> 에서 남자 주인공은 친구 머킨과의 관계를 회상하며 그의 특이한 성격, 비밀스러운 욕망, 그리고 자신과의 미묘한 감정적 줄다리기를 떠올린다. 머킨이 어느 날 충격적인 행동을 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흔들리고, 주인공은 젊은 시절 감정의 혼란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일곱번째로 <폭풍> 에서는 폭풍이 몰아치는 밤, 주인공은 가족 내의 오래된 갈등과 과거의 상처를 마주한다. 악천후 속에서 가족들은 서로에게 숨겨온 감정을 드러내게 되고, 주인공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깨닫는다.

여덟번째로 <피부> 에 주인공은 연인과 함께 살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갖는다. 사랑하지만 자신들의 관계가 정말 오래 지속될지 확신하지 못한다. 일상의 작은 갈등과 감정의 어긋남이 쌓이면서, 이상적인 사랑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느낀다.

마지막으로 <코네티컷>에서 주인공은 한때 살았던 코네티컷에서의 기억을 자꾸 떠올린다. 그곳에서 겪었던 사람들, 선택하지 못했던 일들, 후회와 미련이 남아 있다. 과거를 돌아보며 삶의 방향과 정체성을 재평가한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 수록된 단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하지만 인물들의 내면에서는 끊없이 감정의 갈등이 생기고있다. 특히 <아술>은 자신과는 다르지만 이해하려는 시도와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계, 그리고 질투와 외로움을 동시적으로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앤드루 포터는 단편소설의 짧은 분량 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나에게 단편소설의 매력을 새롭게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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