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연도와 사건, 인물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시, 역사의 쓸모』는 그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한국사 강사이자 작가인 최태성은 익숙한 역사적 사건들을 단순한 연대기나 정보로 다루지 않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온기를 되살린다. 사건 자체보다는 그 사건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감정과 선택에 집중하는 이 접근은,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특히 “옳은 선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많은 사람들의 삶과도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과거의 인물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책 속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이야기는 무신정변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1170년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는 사실 이상으로,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닌 오랜 차별과 불평등의 결과였음을 알게 되었다. 문신들의 부패한 행실과 권력 남용이 얼마나 깊었는지, 그들의 분노는 단순히 지위의 낮음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모욕과 부당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배층과 피지배층, 문신과 무신 간의 단절된 관계 속에서 결국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균열은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겉으로는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내재된 차별과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 벽이 쌓이고 쌓여 결국 무너질 때, 또 다른 무신정변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사건에 그치지 않고,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성공은 숱한 역경과 실패를 딛고 이뤄진다.” 안중근 의사의 삶이 바로 그 말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그는 수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그 실패를 외면하지 않고 끝내 옳은 선택을 했다. 성공한 사람만을 기억하는 세상 속에서, 안중근 의사는 실패를 통해 진짜 인간다운 용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나의 실패들을 떠올렸다. 목표에 닿지 못해 스스로를 탓하던 순간들,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 그러나 이 책은 말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선택을 할 때, 가장 인간답다고.
서서평 선교사의 삶도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서서평은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한센병 환자, 고아,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돌본 인물이었다. 그녀는 이름 없는 여자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사랑으로 그들을 보살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녀의 삶이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은 안타까웠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모두 바친 끝에 결국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마음에 큰 여운을 남겼다. 그녀는 자신을 돌볼 시간조차 없이 이웃을 위해 헌신했다. 이 삶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완성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서서평의 침대 머리맡에는 “성공이 아닌 섬김으로 남은 사람”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 문장을 읽은 순간, 현대 사회가 중시하는 빠른 성취와 결과보다, 진심과 헌신이 가진 진정한 힘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명예나 물질적인 성공보다 실천과 따뜻함을 선택한 인물이었다. 그 점에서 서서평의 이야기는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다시, 역사의 쓸모』는 과거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방향’을 묻는다. 무신정변에서는 부당함을 견디지 못한 인간의 분노를, 안중근 의사에게서는 실패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의지를 배운다. 또한 이완용과 윤동주의 대비를 통해 올바른 교육의 의미를 깨닫고, 서서평 선교사에게서는 사랑의 본질이란 타인을 위한 헌신과 존중임을 배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역사는 더 이상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비추는 거울임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감정과 선택은 수백 년이 흘러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담고 있다. 특히 작가가 강조한 사람 중심의 역사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의 시간 속에서 스쳐 지나가겠지만,
그 짧은 한순간만큼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단순히 역사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