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은 작가의 소설집 치즈이야기는 기묘한 환상의 외피를 쓴, 날카로운 현대 우화와 같습니다. 특히 이 서평에서 주목할 표제작 치즈이야기는 단순히 고통을 잊게 해주는 치즈라는 기발한 설정을 넘어섭니다. 인간이 자신의 고통과 결핍을 어떻게 마주하는지, 그 달콤한 유혹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탐구합니다. 이 이야기가 던지는 기억과 망각에 대한 질문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잠시 잊고 싶어 하는 우리 모두의 내면을 관통합니다.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장치는 치즈라는 매개체입니다. 이 작품에서 치즈는, 어린 시절 자신을 방에 가두었던 엄마에 대한 주인공 ‘나’의 애증과 트라우마가 응축된 지극히 기괴하고도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치즈는 단순히 고통을 잊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주인공이 외면하던 절박한 욕망의 집약체로 기능합니다. 전신이 마비된 엄마를 돌보던 주인공이 고통스러운 기억에 휩싸일 때, 치즈는 그 모든 것을 지워주는 구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우리가 불안 앞에서 회피하려는 나약한 자아와, 그 고통마저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본래의 자아 사이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치즈는 행복해야 한다는 현대 사회의 강박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마비시키기 위해 찾는 모든 종류의 중독적 위안일지도 모릅니다.
치즈이야기는 고통은 나쁘고, 망각은 구원이라는 흑백논리에 의문을 던집니다. ‘나’는 치즈를 통해 끔찍했던 유년의 고통인 엄마의 방임과 학대를 지우려 하지만, 그 대가로 자신을 지탱해 온 다른 소중한 기억과 정체성까지 잃어갑니다. 이는 불행한 기억 또한 ‘나’의 일부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나아가 소설은 고통과 행복이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며, 성장이 좋은 기억만 쌓는 것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오히려 자기 안의 상처와 어두운 기억까지 인정할 때 비로소 온전한 한 사람으로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피하려다 삶 전체를 잃어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치즈이야기는 단순한 재미나 빠른 전개를 제공하기보다, 독자 자신의 연약한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자신의 상처와 화해하지 못한 이들,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모든 것을 잊고 싶다고 생각해 본 모든 이에게 이 책은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입니다. 독자는 주인공의 선택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과 욕망을 성찰하고, 고통을 마주할 용기 혹은 고통을 피할 권리를 고민하게 됩니다. 물론, 명확한 해답이나 따뜻한 위로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냉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결핍과 진정한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마주하길 원하는 이에게, 이 책은 어떤 위로 서적보다 강렬한 현실의 각성제가 되어줄 것입니다.
결국 소설 속 치즈가 병든 엄마가 변한 실체인지, 아니면 현대인의 망상과 중독을 상징하는 거대한 은유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주인공이 치즈라는 유혹을 통해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시험받고 마침내 그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감당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성장이란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기억과 상처까지도 껴안고 나아가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야 할 궁극적인 유혹과 선택이 바로 자기 내면에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나를 잃지 않고 진정한 나의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이 냉혹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