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수행하거나 충분히 강하게 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망이 나 자신의 마음 속에 온전히 들어 있을 때 뿐이야.’
소설 <데미안> – 민음사 (옮긴이: 전영애)에서 나오는 인용구이다. <데미안>은 독일계 스위스인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시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화가인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유명한 책이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복잡하며,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한 문장 문장마다 심오하고 철학적인 의미들이 담긴 작품이다.
이 책에서 주로 주목 받는 것은 알을 깨고 나오는 새라는 비유다. 다만 위에 작성한 인용구 또한 이 소설의 메시지에 있어서 꽤나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 생각되는데 그것은 바로 저 인용이 <데미안>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메시지이자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으로 독자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소설, <데미안> 속 이야기는 일인칭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싱클레어는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과 행위 등 모든 것들의 출신지를 두 세계로 나누어 보게된다. 막내아들로 그는 제 따스한 부모님과 누이들의 품을 가장 이상적이고 안정적인 세계라 믿으며 그런 세계에서만 존재하고자 하지만, 그는 자꾸만 그가 발들인 적 없는 이상과는 거리가 먼 정반대의 세계에 흥미를 가져버리게 되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추악하다 여기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끝없는 흥미를 놓지 못해 저 자신을 원망하며 죄악감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그것을 갈망한다. 그 추악한 세계에 발들이고 속하기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그는 싱클레어의 두 세계는 구분해선 안된다 주장하는 데미안이라는 또래를 만나 카인과 아벨에 대해, 카인의 낙인에 대해 그동안 자신이 배운 것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이 믿어온 것과는 너무나 반하는 그의 주장에 싱클레어는 모순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말을 자꾸만 떠올리게된다. 그 후로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정신적인 영향을 받게되고 추악한 세계에서, 또 깨달음을 얻고 사랑을 하며 순수의 세계에서 자기 내면 속에 자리 잡은 데미안을 그리며 그리워하고 또 그의 어머니, 그와 다시 마주하기도 하며 성장하는 내용이다.
이 <데미안>이라는 작품 속에선 선과 악이, 싱클레어가 구분하는 두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이 모두 시대적 보편성을 지니는 것인지, 내가 정한 악은 과연 내 친구에게도, 이웃 나라에서도 같은 악인지 그게 개성의 길인지 물어오기도 하고 우연이란 것 없는 세상에서 수행 가능한 나에 의한 나 자신의 확고한 의지가 내가 가야 할 곳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시사한다. 물론 해당 부분들을 다루는 것에 관해서 싱클레어가 자주적이지 못하게 나눈 세계를 회의적으로 바라보아서 자칫 종교적인 사상과 반하는 성질을 띄는게 아니냐는 물음도 많지만, 오히려 이 책은 종교에 치중되어 있다 보기보단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과 의지를 대하는 자세를 탐구하는 것에 가깝다보는 것이 읽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종교적으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와 세 개의 십자가와 두 죄수의 이야기가 다뤄질 때도 데미안은 줄곧 기독교 집안에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바른 세계와 발 들이지 말아야 할 세계를 자신의 주관 없이 학습했을 뿐인 싱클레어와는 달리 이를 일반적인 해석과는 다르게 자신의 주관이 가득 담긴 가르침과 반하는 성질의 가정들을 늘어놓는다. 종교적 소재는 데미안에게 영향을 받은 싱클레어가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있던 기존의 시야에서 벗어나서 나아가 성찰적으로 삶을 바라보게 하는 부분으로 작용한다.
단지 이것만이 아니다.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1919년, 20세기에 나온 작품이라는 것인데, 20세기의 작품이 지금 21세기 현대에 이르러서 오롯이 나의 주관은 배제한 채로 바라보는 방향도 모른 채로 내 의견을 남에게 의탁해 버리고 마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의문을 제기하여 주는 소설이라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책의 실제 무게는 가볍지만 그 속의 의미가 지닌 무게는 작가의 삶에 대한 성찰이 녹아들어 있는 만큼 그 무엇보다도 무거워서 우리를 삶의 방향과 배경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데미안>은 결코 난이도가 낮지 않지만 청소년 권장 도서로 불리기도 한다. 그것은 헤르만 헤세, 그가 우리가 청소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영원히 탐구해야만 하는 철학적 문제와 회의론적 사고를 이야기로 흥미롭게 풀어냈기 때문일 테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의 성장기에 들어서 있다. 늙어가게 될 우리가 외면적인 성장을 마쳤다 하여 내면까지 완성된 성인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니까. 그렇기에 인간 내면의 자아는 우리가 죽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성장기를 겪을 것이다. 그러니 내면의 성장기를 맞고 있는 우리들 중 그 누구라도 현재에 있어 방황하고 있다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며 나의 진정한 의지와 삶에 대해서, 싱클레어와 함께 우리 내면에 데미안과 같은 나의 새로운 자아가 있는지 성찰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