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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넘어, 자아를 향하여
Book name
저자/역자
헤르만 헤세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09-01-20
독서시작일
2025년 10월 11일
독서종료일
2025년 10월 11일
서평작성자
이*연

Contents

처음 『데미안』을 접한 건 중학생 때였다. 워낙 유명한 책이고 청소년 문학 필독서라서 읽기 시작했지만, 당시의 나는 문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내포된 의미도 알 수 없어 결국 중간에 포기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이 많았다. 특히 종교적, 철학적 논의가 담긴 부분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낯섦이 오히려 흥미로웠다. 나는 헤르만 헤세가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자아의 발견’을 어떻게 설득하는지 곱씹으며 읽었다.

 

『데미안』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어린 시절의 순수한 세계에서 출발하여 점차 자신만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선)”와 “어두운 세계(악)”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그는 겉으로는 착하고 순종적인 아이였지만, 내면에는 거짓말과 본능적인 욕망이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겉으로는 모범생이길 원했지만 내면의 질투나 두려움을 숨겨야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싱클레어가 ‘어두운 세계’의 죄책감과 동시에 묘한 끌림을 느낄 때의 그 모순이 반갑게 느껴졌다. 데미안의 등장은 단순한 인물의 변화라기보단 싱클레어에게 새로운 시각과 내면의 힘을 일깨워주는 존재로 다가온다.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싱클레어의 정신적 안내자이자 또 다른 자아의 상징이다. 일반적인 도덕 기준을 의심하게 만들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이 과정에서 싱클레어와 나는 ‘선하게 보이려는 것’과 ‘진짜 나로 존재하는 것’의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사회가 요구하는 선함 뒤에 숨은 위선이나 두려움을 직면하는 용기가 진정한 성장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저 한 여자를 얻는 대신 마음속에 온 세계를 소유했다. 하늘의 별 하나하나가 그의 안에서 불타고 그의 영혼을 통해 기쁨의 빛을 뿜어냈다. 그는 사랑했고 그러면서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오래 머물렀다. 에바 부인을 통해 드러난 사랑의 의미가 누군가를 소유하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가는 여정으로 그려진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실제로 관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이 문장은 내게 위로이자 다짐처럼 다가왔다. 사랑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마주하는 경험이며, 그 순간의 충만함이 이 문장 속에서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진정한 사랑은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인간 내면의 복잡함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선과 악의 갈등”, “낮과 밤의 대립” 같은 상징을 통해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가 정말로 이분법적으로 나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책을 읽으며 나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해 결국 ‘나는 내 안의 어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 안의 불안이나 슬픔 등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거나 억누르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데미안』은 그것을 외면하기보다 직면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선을 따르기 위해 악을 지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감정이 나의 일부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나’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는 그동안 나 자신에게조차 허용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했다.

 

『데미안』은 선과 악의 대립을 그리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 자신을 향한 깊은 성찰이 되어줬다. 내면의 공존하는 빛과 어둠을 받아들이는 것, 그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이 아닐까. 나의 어두운 면까지 끌어안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여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책은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혹은 기존의 도덕이나 가치관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야기 전개는 단순하지 않고 때로는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간을 들여 곱씹다 보면 그 안에서 나를 비추는 거울 같은 순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이 사유의 과정은, 생각의 틀을 더 유연하게 만들어주었고, 나는 그 경험이 꽤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졌다고 느낀다. 철학적인 깊이를 즐기는 독자라면 특히 더 큰 울림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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