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s

>>
Book Reviews
>
감정이 이름 없는 댐에 막혔다
저자/역자
박준
출판사명
문학동네
출판년도
2017-06-30
독서시작일
2024년 10월 30일
독서종료일
2024년 11월 07일
서평작성자
박*이

Contents

시집의 가장 큰 매력은 어떤 곳을 펼치든 하나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목차를 펼쳐다가 책의 제목과 같은 시를 찾는 재미이다. 이번에는 목차를 먼저 펼쳤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박준 저, 문학동네)는 책의 중앙 부분에 있었다. 나름 자극적인 제목임에도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얄팍한 상상과 달리 내용은 투박했다. 타인을 이름을 빌려 밥벌이하는 자신의 신세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달리 말한다면 우리는 모두 타인을 이름을 빌려 밥벌이한다. 회사에 다닌다면 회사의 이름 아래에, 공직에 있다면 나라(혹은 국민)의 이름 아래.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시집이다. 한 권 안에 있는 시들은 정형화된 시이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시도 있다. 하지만 이걸 리듬이니 비유니, 심상이니 그런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 글에 없을 것이다. 시집을 읽으며 그런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렵다는 쪽에 가깝다.

 다만 감정을 공유하는 일은 가능하다. 읽으면서 지속해서 들던 생각은 ‘정말 힘들 때 본다면 많은 위로를 받겠구나.’ 였다. 이걸 바꾸어 말한다면 “혹시 힘드시다면 이 시집을 읽어보심이 어떨까요?” 일 것이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서 지속해서 받은 감정은 , 이별 혹은 죽음, 아쉬움, 후회, 해소될 길이 보이지 않는 공허 등이다. 모든 페이지가 검은 활자보다 텅 빈 공백이 더 많았다. 어떤 페이지는 단 두 줄 아래도 모두 공백이었다. 반대로 어떤 페이지는 첫 줄부터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러한 편집에 어떤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우연의 산문이라 하더라도 이 공백에서 공허를 느꼈다.

 문득 「어린 왕자」가 생각났다. 처음은 독후감을 쓰기 위해 처음 펼쳤던 11살의 봄. 초등학교 6학년, 6년을 다닌 학교에서 졸업하던 겨울에 한 번 더. 시간이 남아돌던 수능이 끝난 그해 12월에 세 번째로 읽었다. 처음은 다 읽지도 못하고 독후감은 다른 책으로 썼고, 두 번째는 다 읽기는 했으나 이해가 안 되어서 다시 책장에 꽂았고, 세 번째야 비로소 「어린 왕자」를 읽고 무언가를 느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같은 느낌이다.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기는 하지만 말로 형용하기 힘든, 한다고 하더라도 마침내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묵직한 감정.

 무언가를 적어 남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부유하던 감정들이 단어를 입고 세상에 태어난다. 텅 비어야 했던 페이지가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해 활자로 가득 찼다. 시인은 이 감정을 압축하여 담아냈을까. 아니면 담아낼 감정을 고르다가 차마 다 담지 못해 담을 수 있는 것만 담은 걸까. 이루어 담지 못한 감정을 막는 댐이 생겼을 때, 이 책을 통로 삼아 쏟아 내길 바란다.

 

 

Full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