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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여름에
저자/역자
김연수
출판사명
레제
출판년도
2023-06-26
독서시작일
2024년 09월 16일
독서종료일
2024년 09월 27일
서평작성자
김*영

Contents

 시간이 우리를 얼마나 잃어버리게 하는가, 2023년 여름에 세상에 드러난 ‘너무나 많은 여름’은 시간이 빨리 흘러버렸으면 하는 시기에 천천히 흐르는 계절을 온전히 즐기며 음미할 수 있게 해 준다. 책의 저자인 김연수는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했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차례로 받으며 2024년 9월 현재, 총 85권의 도서를 출간하였다.

 2020년 10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창이던 제주도의 어느 날 김연수 작가는 바다를 등지고 골목을 따라 걸으면 나오는 한 독립 서점에서 낭독회를 가졌다. 낭독회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밭일을 마치고 물에 젖은 듯한 발걸음으로 오시는 독서 모임 회원분들이셨다. 낭독회가 시작되고 눈을 감는 분을 보며 내 책이 지루한가에 대한 걱정이 아닌 ‘조금은 주무셔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내 책이 조금은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렇게 소설에 대한 김연수 작가의 관점이 변화하였다. 산문만 써오던 그가 소설을 쓰게 되었고, 짧은 이야기로 낭독회를 이어가게 됐다. 그런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구성된 책이 오늘 읽어본 ‘너무나 많은 여름이’었다.

 특이하게도 플레이리스트가 존재한다. 책을 읽는 사이사이 곁들일 노래가 추천되어 있다. 장국영부터 페퍼톤스, 백예린까지 장르를 아우르지 않고. 특히, 오늘 소개될 이야기 ‘여름의 마지막 숨결’에 추천된 노래는 Epic45-Summer’s First Breath. 이야기 제목과 달리 여름의 첫 번째 숨결이다. 그래서 이야기와 더 잘 어울린다. 첫 번째 여름에 시작된 나와 그 애가 여름의 마지막 숨결까지 함께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다. 실제로 유튜브 영상으로 시청하게 된다면 두 남자아이가 등장하는데 책 속 ‘나’와 ‘그 애’를 투영하여 본다면 더 깊은 몰입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여름이 잊히지 않는다. 김연수 작가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의 여섯 번째 이야기인 ‘여름의 마지막 숨결’은 이렇게 시작한다. 작 중 주인공은 중학교에 올라가 처음 친구를 만나 이 년 뒤 서로 멀어질 때까지를 말하고 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중학교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학생 때 평생 단짝일 거로 생각했던 친구와 연락도 잘 하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많고 어떻게 지내는지 깜깜무소식인 경우가 있다. 책에서는 글을 읽는 누구든지 ‘어? 나도 이런 적 있는데!’를 외칠만한 경험을 풀어내고 있다.

그것도 멋있었다. 나는 그 애의 모든 게 좋았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10년 뒤의 미래가 함께 그려지던 친구가 있지 않았는가. 얘와 나는 영혼의 단짝이야! 얘가 최고야! 외치던 과거가. 그리고 10년 뒤 그 친구가 옆에 함께하고 있었는지를 보면 대다수가 아니요. 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 당시 우리는 본능에 충실했고 우리의 멀어지는 미래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장하고 생각한다. 시간은 항상 우리를 한발 앞서간다. 멈춰서라고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때까지.

이 년 뒤, 그 친구를 따라 다시 그 철교 밑으로 간 적이 있었다.

 하교하며 같이 뛰어들던 경부선 철교 아래 그곳을 기억한다. 여름의 더위는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그 애와의 즐거웠던 하루가 시냇물을 따라 멀리 하류로 이동한다. 우리의 추억은 이동한 시간만큼 희미해져 모자이크 낀 사진처럼 희미해진다. 친구는 항상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내가 그 친구를 바라보는 생각이 변화하듯 그 애도 성장하고 변화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을 때 그때가 멈춰있던 시냇물이 흘러갈 때이다.

그 모습에 나는 실망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처럼 슬펐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 밤이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이 년 전이라면 눈물이 났을까? 가끔 별거 아닌 일에 실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애인이 생긴다든지, 학교에서 가장 힘이 센 아이와 친하게 지낸다든지. 내가 친구에게 상상 속에서 허용한 범위를 벗어나는 일을 마주한다면 말이다. 나도 모르게 그 애를 억압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있는 그런 어린 시절을 맞으며 변화한다. 성장한다. 그럼, 이제 새로운 만남을 이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처음보다 덜 슬플 것이다. 좀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우정뿐 아니라 삶에서의 모든 관계에서 말이다. 여름의 마지막 숨결은 이렇게 나의 단단한 철갑옷이 되어준다.

 살아가면서 나의 삶을 온전히 느끼는 모두,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모두라면 이 소설과 사랑에 빠질 것이라 장담한다. 아니라면 이 책과 사랑에 빠지며 삶과 인생을 환기해 보라 권하고 싶다. 이 책을 보다 잠들어도 좋다. 바쁜 일상에서 한 장만 읽고 덮어두어도 좋다. 그 무엇이든 책을 감상할 마음이 있고 잠깐의 위로와 안녕을 얻어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니까. 이 책을 지금 처음 알았고, 낯선 마음이 든다면 더 잘되었다. 속는 셈 치고 한 장만 넘겨보아라 혹시 모르는가, 당신의 삶을 뒤바꿀 짝을 만났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의 영감에 불씨가 되어주고 사랑에 큐피트가 되어주고 쳐진 어깨를 감싸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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