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편의 짧은 소설들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독특하고 희한하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짧은 내용 속에 울림을 담기란 쉽지 않다. 언뜻 보았을 때 이 책 또한 그렇다. 큰 울림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단순하고 가벼운 이야기들의 나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 정도로 보이는 이 책이 주는 여운은 존재감이 꽤 크다.
나의 분신 같은 유령이 생기고, 해파리가 되는 자살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나무가 된 남자를 마주하며 변온동물이 된 남자를 땅에 파묻어주고, 눈빛으로 구멍을 뚫어버리는 아랫집 주민에, 이번에는 내가 진짜 유령이 되는 등 말도 안 되는 허구의 상황들이 하나씩은 꼭 끼어있는 단편소설들. 처음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 “이게 뭐야?”하고 반사적으로 소리를 내뱉게 될 것이다. 빵집을 지나칠 때, 엘레베이터에서 아랫집 사람을 마주칠 때 등 이 책의 독특하고 이상한 설정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이 이상한 설정과 별개로,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묘한 불편을 느낀다.
언제부터야? 언제부터 김재현을 봤다고 속인 거야? 찬장에서 소리 났다는 것도 거짓말이었어? 정우는 무슨 소리냐고 했다. 조는 대답하지 않고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재수 없어. 그 순간 정우가 조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씨발, 니들 다 재수 없다고.
<집에가서 자야지> 中
무릇 사람이라면 외로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고, 특히나 상처받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고, 안정을 찾고 싶어 한다. 조에게 김재현이 그랬고 정우에게 조와 화자가 그러했다. 정우는 원인 불명의 이별에 사무치게 외로웠고, 때마침 나타난 두 남자(조와 화자)는 정우에게 좋은 상대였을 것이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들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을 들켰을 때 정우의 태도는 잘못한 사람의 그것이 아니라, 되레 화를 내는 모습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사과하러 달려 나가지 그랬어, 형들에게 미안하다며 붙잡지 그랬어, 왜 그랬니? 사람이 고팠니? 불편감 속에서도 정우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참 많아진다. 이는 <집에 가서 자야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령의 마음으로』 책 전반에 걸친 특징이다.
외로움으로 인해 어딘가 비뚤어진 인물들이 꼭 등장한다. 꼭 비뚤어지지 않아도,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언젠가 느껴봤을 법한 부정의 상황과 감정들을 보여줌으로써 불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쁘지는 않다. 단순히 불쾌함에서 끝나기보다는 이 인물들이 어째서 이러한 행동을 하는 걸까, 이 사고의 흐름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하는 질문이 들게 한다. 질문들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첫 화살은 작 중 인물이었다 한들 결국 화살표는 불쾌감을 느꼈던 그 인물과 유사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향하게 된다. 이 책은 독자에게‘불편한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기이한 일들로 인해, 현실의 무게에 눌려 자신에 대한 이해를 잃어가던 인물들이 환상적인 존재들을 매개로 타인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되고 이를 통해 평범한 일상에 가려 숨겨져 있던 내면 깊숙한 마음을 자각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된 사람들, 막막한 현실을 버티고 견디는 사람들, 그러다 지친 사람들에게 이들의 이야기는 위로이자 응원으로 다가올 것이다.
위로란 대체로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지 혹은 현실적인 문제 해결이라 생각하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불편한 위로도 필요하지 않을까? 비록 우리 현실에는 해파리로 변하는 사람도 나무가 되어버린 사람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의 묘한 불쾌함 속을 통해 불펴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방식의 위로를 전하는 이 책은, 어쩌면 주인공들처럼 부정의 상황과 감정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위로보다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