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s

>>
Book Reviews
>
잃어버린 저항심을 들춰내다;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 - 괴테, 『파우스트』 中
저자/역자
황현산
출판사명
난다
출판년도
2016-05-11
독서시작일
2024년 07월 07일
독서종료일
2024년 07월 09일
서평작성자
임*겸

Contents

  1. 들어가며

저자 황현산은 문학 평론가이자 불문학자로, 다양한 언론 신문의 칼럼을 오래간 장식해 왔다.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같은 학교 명예교수이며 한국번역비평학회의 초대회장이기도 하다.

그 시절에 우리는 모두 괴물이었다.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 – 과거도 착취당한다

불문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의 수업을 교양으로 두어 번 들어본 적이 있다. 이때 느낀 공통점은 뭐랄까 탄탄한 태도로 불편한 이야기를 심도깊게 풀어가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교수님의 태도에 불만을 토로할 수 없었다. 불편한 이야기이지만 필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불편함을 불러일으킨다’라는 것 자체로 필요성이 증명된 것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약 2년 전의 심상을 다시 떠올렸다. 사회학과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하는 동안 언젠가 잃어버린 내 그림자를 돌아보게 된 기분이다. 그래서 불편하고, 또 그래서 시원한 기분이 된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굳게 믿는다. 공식적으로 이 나라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고, 또한 지배해온 사람들이 동상이나 기념관을 세워 추앙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그 밑에서 핍박받은 사람들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염원을 버리지 않았고, 그래서 옛날과 많이 달라진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 내가 믿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이 책은 ‘언론사 선정 올해의 책’으로 두 번이나 선정되고, 한겨레신문의 ‘주요일간지소개도서’로도 선정되었다. 책을 읽어가며 이 이유를 유추할 수 있었다. 저자 황현산이 뱉는 단어의 조합들이 언론에 몸담는 이들의 어떠한 초심을 자극하는 글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사회학자 맑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맑스 역시 저자처럼 칼럼에서 사실적이고 논리적인 입담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자국에서 추방당해 타지에서 간간히 친구의 도움을 받아 배고프게 살다 눈을 감은 것은 다르겠지만.「내가 믿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장의 위 문단은 이 작가의 신념과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장에서 저자의 신념이 보이는 문장들을 보자면 저자의 매력이 한 층 두드러진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한 이야기일수록 깊은 이야기가 된다

감수성은 그 사람의 질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고아낸 인간으로서의 생각과 말들은 기어코 새상을 관철해낸다

뿐만 아니라 저자의 글쓰기 방식도 눈여겨 볼 수 있다. 저자의 글 짓는 방식이 특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불어식 글 순서와 한국어식 글 순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불어식으로 구상된 문장이 다시금 한국어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한글만의 묘미가 증폭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저자의 글은 주체에 대한 설명이 우선한 후 주체를 부연하는 구조가 종종 있는데, 이런 요소가 글을 더 재밌게 만들었다. 이른바 ‘떡밥’이 던져지고 회수될 때 ‘아차!’를 일으켜 재미를 느끼게 하듯이 말이다.

문단 구조도 특이하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엮어진 특성상, 각기 문단들은 그 에피소드 안에서만 그려지기 마련인데, 특정 문단들은 그 에피소드 밖을 동시에 그려낸다. 이런 문장 속의 통찰은 두 번 세 번 곱씹어 생각하게끔 한다. 이 저자의 글쓰기 방식은 그 자체로 ‘밤’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문학적으로 지양되는 글쓰기를 오히려 적절하게 녹여내어 글의 맛을 돋운다. 책을 읽으면 더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간략) 괴테의 파우스트가운데 한 구절,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여기서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시인들은 낮에 빚어진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해줄 수 있는 새로운 말이 어둠의 입을 통해 전달되리라고 믿었으며, 신화의 오르페우스처럼 밤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걸어들어가 죽은 것들을 소생시키려 했다.’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

 

1) 나의 밤, 나의 책, 나의 글.

내가 글로 상을 받게 된 건 밤 중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내가 처음으로 ‘독후감 대회’를 나간 건 중학교 1학년 때인데, 이때 대회에는 지정 도서가 있었다. 그런데 국어 선생님은 지정 도서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가지고 글을 쓰라 하셨다.

그때 나는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좋아서, 또 국어시간에 컴퓨터실에 있다는 게 좋아서 가장 늦게까지 자리에서 글을 쓰다가 작성을 마친 독후감을 제출하고 컴퓨터실을 나왔다.

『꿈꾸는 다락방』을 주제로 쓴 내 글은 그때 전국 대회에서 우수상을 탔다. 상장을 건네던 국어 선생님도 의아해 하신 기억이 난다. “지정 도서가 아닌데 상을 탔네. 희한하다. 그치?”

2) 밤이 선생이다

‘밤이 선생이다’라는 책의 제목은 다중 부정의 표현으로 본질을 비춰낸다. 저자는 분명 교수이지만 진정한 선생은 아니며, 학생들은 저를 선생이라 하지만 그들에게 진정한 선생은 ‘밤’인 것이다. 저항성. 혹은 대항성은 진정성을 가리키는 것 같다. 저자가 삶에 죽음이 함께할 때 길이 더 명확해진다 했던가. ‘어디서 말대꾸야’처럼. 저항성은 결국 나의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말대꾸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도 같다. 아니 말대꾸의 방법이 진화하면서 더 이상 말대꾸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지. 스스로가 무서워하는 일을 하는 게 되려 더 잘 되는 길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양면을 메꾸는 일이기 때문인 걸까.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잘못된 코드는 그만큼 더 강압적이다. 삶의 진실과 따로 노든 코드는 결코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 모자 쓴 사람은 누구인가

사실 나는 서평쓰기에는 잼병인 것 같다. 내가 더 즐겨 보는 독후 활동은 ‘독서감상문’이니 ‘독서에세이’니, ‘서평’이니 그런 것 상관없이 사람냄새가 가득 베긴 아마추어들의 글이다. 무슨 전문가들이 점수를 매기고 평가를 내려서 ‘최고의 도서!!’라고 한 책보다 아마추어들이 꾸밈없이 툭. 뱉는 감탄사들이 더 와 닿는다. 그러니까, 그냥 별점만 매기고 요약한 인스턴트 문자들 말고.

사람냄새가 잔뜩 베인 감탄사들과 책을 통해 그려진 그들만의 일화들이 더욱 책에 스포트라이트를 가하는 것 같다. 구전에 돌고 돌아 인간의 삶과 야무지게 버무러져 많은 사람이 찾아 읽는 책처럼. 형태는 없어도 그 과정에서 닳고 닳았을 이야기들처럼.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저자의 일화가 생각난다. 저자의 아이가 시험에서 저서를 집필한 작가의 심경을 맞추는 문제에서 결국 답을 틀려왔다고. 그 본질적 이유는 정답진실과 달랐기 때문일테다. 모자 쓴 사람의 이름은 알 수 없듯이.

  1. 나가며

책 『밤이 선생이다』는 숨겨둔 저항들을 탄탄하고 견고하게 풀어내는 책이다. 제 삶의 진실로 통하는 길을 직면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더불어, 참신하고 매력적인 글의 방식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다시 읽는 문장

‘그 시절에 우리는 모두 괴물이었다.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금지된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를 내장에 쌓아두고 살았다.’

Full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