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s

>>
Book Reviews
>
깊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저자/역자
황현산
출판사명
난다
출판년도
2016-05-11
독서시작일
2024년 05월 19일
독서종료일
2024년 05월 24일
서평작성자
박*하

Contents

“밤이 선생이다” 는 낮이 앗아간 것을 되찾아주는 302쪽만큼의 짧은 여정이다.

뭉근한 시간을 누리는 이들이 다시금 본성을 되찾도록 만드는, 뜨뜻미지근해 저온화상을 남기고 가는 문장들과 함께 있으면 그가 가지는 애정들이 어찌나 큰지 몸에 스미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의 삶 조각들을 이어 붙인 하나의 조각보를 지어 모르는 얼굴의 목에 감아주는 뜨뜻한 손길과 비슷하다.

1945년, 광복이 찾아오던 때부터 2013년 “밤은 선생이다“의 초판이 발간될 때까지. 2~30년간 쓰인 수많은 글이 하나하나 정성스레 정리되어있다. 작가가 초판 발간 5년 후인 2018년도에 타계했음을 생각하면 이를 읽는 일이 그와 만나는 것과 진배없지 않을까. 글의 첫머리만 보아도 젊은 문인들이 고요하고 겸손히 밤하늘과 골목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황현산을 선망하는 이유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곧장 깨닫는다. 그의 담백하고 서정적인 언어들과 사유에서 오는 단정함이 위력을 가져 자칫 압도당할 수 있다.

광복, 6.25 전쟁, 사상 탄압 등. 작가는 마치 불가피한 자연재해처럼 닥쳐오는 사건들에서 살아남아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그렇기에 그는 부끄러움을 알았고, 두려움을 알았고, 또 흉터를 보살펴 어떻게 상처 입었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

그가 건조한 울분을 토해내고 호소한 착취당해온 과거가 활자의 형태로 다가오면 의식 한 편에 묻어둔 부정적이고 또렷한 생각들이 독자를 황혼 일출에 쫓겨나는 새벽처럼 몰아내 버린다.

”한 겹 레이스의 베일은 항상 물질적 찌꺼기를 남기는 언어의 현실이고, 따라서 인간의 현실이고, 언제나 마지막 한 장의 베일이 남을지라도, 그 베일을 차례차례 벗겨가는 것은, 그것이 “가려 감추”게 하기보다는 “떠오”르게 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 2012년도에 출판된 2번째 비평집 ”잘 표현된 불행“ 의 일부로 그의 펜의 무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은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을까, 마냥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기만 한다면 진정 세상을 연모한다고 말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싶다. 투박함과 잔인함도 들춰내어 숨을 마시듯 들이쉬는 일은 무릇 삶을 일구는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이다. 그야말로 수면으로 ”떠오“르게 하는 법,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닌가.

작가 황현산의 매력 중 하나는 일상을 둘러싼 사건들에서 가장 아픈 부분을 올림에서 온다. 치욕적일 정도의 억압, 불타버린 노동자들, 달동네 경사에 출렁이는 수통까지. 후벼 파듯 사회의 숨기고픈 부분을 직접 보여주며 우리가 외면하며 살아오던 주제의 화두를 성냥 불 지피듯 꼬집어 던진다. 아프지만 조금만 지나면 곧 알싸하고 기분 좋은 홧홧함으로 변모한다.

그걸 느꼈다면 이제 우리만의 생각들도 꺼내보는 건 어떨까. 가끔 너무 바쁘게 살다보면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를 때가 생긴다. 사소한 것은 뭉개버리고 사는 데에만 급급하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가끔이나마 자그마한 행복을 다시금 발견하고 싶다면, 조그마한 것들을 손에 쥐고 싶다면 오늘 ”밤은 선생이다“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 마치 카프카의 도끼처럼, 얼어붙은 바다를 깨어 우리를 파도치게 해줄 것이다.

Full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