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우 작가는 2019년도에 문학사상의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신인 작가이다. 저자는 『유령의 마음으로』를 통해 발랄한 체념을 이야기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다가 그만두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사람의 인생은 몇 개의 단편으로 엮어낼 수 있을까. 작품 속 결말을 지나 다시 발단으로 가기까지 몇 번의 안녕이 필요할까. 놓아야 하는 걸 알지만 놓을 수 없는 고통, 슬픔, 사랑, 체념. 이 책은 이런 마음들을 지나 새로운 여정을 맞이하는 인간의 틈새를 이야기한다.
총 8개의 단편으로 엮어진 이 책은 ‘어제의 주인공’과 이별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각기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적극적으로, 또는 수동적으로, 혹은 아예 타자의 관점에서 틈새를 열어 ‘내일의 주인공’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각기 단편마다 틈새를 여는 열쇠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유령이었다가, 해파리었다가, 나무였다가, 또 말도 안되는 다양한 모습으로.
첫번째 단편, ‘유령의 마음으로’에서 화자는 유령을 빌려 어제의 주인공과 이별한다. 식물인간이 된 남자친구, 어딘가 날아가버린 사랑, 공허 속에 차오르는 외로움, 슬픔, 미안함, 지친 마음들.
화자가 이름 붙인 ‘유령’은 털어놓고 싶지만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 속 진실된 모습을 투영해낸다. 이 알 수 없는 이상한 생명체에 ‘유령’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뭘까? 화자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유령’이 이미 지나보냈어야 할 ‘어제의 나’를 투명한 몸으로 비춰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단편은 화자가 더이상 남자친구의 병문안을 가지 않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글쎄, 지금쯤 ‘내일의 나’를 만나 틈새를 벗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기에는 지쳤고 죽기에는 억울한 사람들은 해파리만큼이나 많았다.”
해파리는 빛이 나지 않았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순간을 지나 해파리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빛이 나지 않았다. 살기에는 지쳐서 해파리가 되기로 했는데도.
두번째 장의 ‘빛이 나지 않아요’는, 최선을 위한 선택이 최선을 빚지 않았을 때의 무력감, 그 무력감의 틈새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제일 와닿는 장이기도 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무력감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테다. 도전과 선택의 순간은 매일 매순간 주어지니깐.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한창동안 반짝거리며 최선을 다해 일을 해냈고, 나의 자리도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그런데 정작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섰을 때 나는 더이상 반짝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반짝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맞다고 생각한 일들을 꾸준히 해냈고, 노력을 기울인 만큼 성과도 계속해서 나왔다. 동시에 내 마음도 꾸준히 시들고 있었다.
해파리는 뇌가 없는 동물이라고 한다. ‘좋다’, ‘나쁘다’를 판단할 수 없는. 그 많은 바다 생물 중에 해파리가 틈새의 열쇠로 사용된 이유가 뭘까. 아마 사는 게 더 이상 사는 게 아닌, 무색무취를 내뿜게 된 사람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닐까.
그러나 반짝이지 않는 죽음은, 반대로 반짝이는 탄생의 순간을 만들었다. 당시 나의 상태는 말 그대로 번아웃 상태에서 토악질을 해대며 겨우겨우 일을 해내는 수준이었는데, 어떤 형씨가 나를 살려냈다.
이미 그 사람은 몇십번이고 이런 순간을 겪어낸 거겠지. 그래서 더 내 마음을 잘 알았던 거겠지. 그때 내게선 ‘해파리’의 냄새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아는 사람만 맡을 수 있는 그런 냄새.
형씨는 내가 이 길에 최초에 발을 들인 이유를 생각하게 해줬다. 그 사람의 주변엔 나의 간절함을 아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해파리들의 파티가 아닐 수 없다. 아니, 단편의 틈새 이후에서는 이미 해파리들이 다시 사람이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가장 반짝이지 않아서 빛날 수 있는 존재.
내게 『유령의 마음으로』는 썰물의 기다림을 표현하는 책처럼 느껴졌다. 전반적으로 바다를 많이 닮은 책이다. 글에 등장하는 단어의 색채, 동물, 죽음은 찰랑거리는 여름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주변 흐름을 미루어 제 안의 해소되지 못한 마지막 이야기를 찾아내는 구조 역시 그러하다. 밀물, 썰물의 오고 감 처럼.
전반적으로 처진 분위기가 강한 책이라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작품과는 거리가 있지만, ‘말도 안되는 오늘’을 풀어낼 ‘말도 안되는 열쇠’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