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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사랑에 대한 끝없는 고찰. <유령의 마음으로>
저자/역자
임선우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22-03-25
독서시작일
2024년 06월 07일
독서종료일
2024년 06월 07일
서평작성자
황*기

Contents

너 자신을 ‘나’라고 하는 대신에 ‘그 사람’으로 생각해 보라는 말이 있다. 나라는 주관적인 존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내가 가졌던 생각과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고, 나아가 나만의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보를 쉴 새 없이 접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게 되는 작금의 시대에서 이러한 넓은 시각과 그런 시각을 바탕으로 남들의 잣대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소신을 가지는 것은 꽤나 중요하게 작용되는 사항이다.

임선우 작가의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는 이러한 ‘객관화’를 주제로 들어 이야기하는 작품이 많았다. 사이비종교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낯선 밤에 우리는’도, 강렬한 결말이 뇌리에 꽂힌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도 인상깊었지만 그중에서 책의 제목과 이름이 같은 ‘유령의 마음으로’ 와 ‘빛이 나지 않아요’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장르도 분위기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두 소설이지만 그곳에는 항상 각양각색의 ’나‘가 존재했다. 때로는 직접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어떨 때는 은유적인 묘사를 통해 은근히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다양한 양상 속에서도 놓치지 않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둘러싼 ‘사랑’ 이었다.

남자친구인 ‘정수’가 식물인간이 된 지 2년. 어느 날 주인공의 앞에 한 유령이 나타났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유령의 마음으로’에선 유령이라는 존재를 통해 ‘나’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유령은 ‘나’를 객관화하는데 있어 꽤나 직관적인 존재다. 왜냐하면 소설에서 그것은 나와 똑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고,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분명 덤덤한 표정을 지었는데, 유령은 나에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했다.’ 같이 색다른 시각의 문장도 읽어보는 쏠쏠한 재미도 있었다.

‘나’는 유령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세상으로 표출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정표출이라고 치부했던 것이 결국 남자친구에 대한 감춰놓은 진심을 밝혀내는 원동력이 되었고, 끝내 그런 자신의 모습까지 부정하지 않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자 유령은 사라졌다.  나에게 마음을 속삭인다는 아름다운 표현을 끝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추악하고 비겁하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그 과정을 넘어선다면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사랑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유령의 마음으로’는 그 과정까지 나아가기 위해 등을 밀어줄 수 있는 그런 작품으로 다가왔다.

또한 ‘유령의 마음으로’는 앞으로 읽어나갈 소설을 위해 틀을 잡아주는, 즉 전체적인 주제의식이 강하게 나타나는 작품이었다. 독자의 시선을 끄는 과감한 내용 전개를 시작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진중한 소재를 담담하게 마무리하는 작품의 분위기는 가볍게 읽기 시작하여 무겁게 끝낼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디스토피아적 내용을 다루는 ‘빛이 나지 않아요’ 또한 배경 설정과 관련해선 ‘유령의 마음으로’와 차이점이 있었으나 그 골자는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는 변종 해파리가 도래한 세상에서 꿈을 포기한 채 내심 세상이 멸망하기를 바라며  처절하게 살아가는 나와 ‘구’의 삶을 그려낸 소설은 앞서 ‘유령의 마음으로’의 경우와 비슷하게 과감한 내용 전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타협하는 것을 선택한 ‘나’는 그 속에서 다양한-객관화된- ‘나’를 만난다. 변종 해파리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도 같은 심정을 느끼며,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자 같은 실패를 겪은 ‘구’를 통해서는 꿈에 대한 열망을 비롯해  현실을 다시 상기시켜 보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마침내 빛나는 존재가 되길 원했던 ‘김지선’과의 마지막 이야기를 통해서 ‘나’는 더 이상 타협이 아닌 도전을 추구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구를 사랑하는 자신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선택한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위해 다시 서울로 향하는 버스를 탈 것을 계획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나‘는 구와 함께 허름한 집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도, 사람들이 해파리가 되도록 돕는 자신의 모습도 받아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를 포기하면서 까지 사랑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나에게는 있었다.

’빛이 나지 않아요‘는 자칫하면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꿈과 현실에 대한 타협이라는 주제를 특유의 모노톤 분위기로 매끄럽게 풀어냈다. 그러나 동시에 일련의 과정에 있어 선택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구‘에게 결심을 전달하는 마지막 부분이 특히나 그러하였다.

<유령의 마음으로>의 소설 두 편은 현실의 경계를 그렇게까지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나’와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과 고민을 다양한 시각에서 표출하며 독자에게 위로와 열정을 전달하는 매개로써 작용한다. 개인의 내적 성장을 중심으로 조명하지만 그럼에도 타인으로부터 비롯되는 객관화를 통해 공동체의 미덕을 잃어버리지 않는 작가의 소신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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