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마음으로’(임선우 소설집, 민음사)에는 여덟 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이들은 작가가 보고 경험한 다음과 같은 장면들로부터 비롯된다. ‘침대 발치에 놓인 거울, 방 안에서 내려다보던 새벽의 고속도로, 폐업한 가게 내부에서 죽어 가던 식물들, 흐르는 물, 더 세게 흐르는 물, 독립 영화관 스크린에 닿던 지하의 빛과 가로수에 닿던 지상의 빛, 나무라는 이름의 나무, 새벽 첫차와 자정의 택시, 신경증과 환영들, 낮 같았던 밤과 밤 같았던 무수한 낮들.’(작가의 말에서) 그렇기에 소설 속 인물들은 독자와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들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묘사는 진득한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독자들과 다르지 않다. 각자에게는 특별한 존재들과 함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스스로 세운 기준을 가지고, 자신만의 목표를 좇으며, 저마다의 고민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에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작가의 취미는 평범한 일상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민음사 어바웃 북 인터뷰) 작가가 문득 느끼는 묘한 순간의 이질감과 독특한 구상은 고스란히 소설에 묻어 나온다. 평범한 일상에서 살아가는 동시에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환상적인 사건을 경험한다. ‘나’와 똑같이 생긴 유령, 닿기만 해도 사람을 해파리로 변하게 만드는 변종 해파리의 등장, 방 안에 뿌리를 내린 나무 인간, 넓은 서울에서 운명처럼 만나는 동창과의 치유, 도마뱀이 만들어 준 인연, 땅속에 묻혀 겨울잠을 자는 남자, 쳐다봄으로써 생기는 바닥의 구멍, 급사 후 이승에서의 마지막 100시간이 그렇다.
이는 필자의 일상에도 작은 환상을 심어 준다. 자주 가는 빵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작은방, 갈 곳 없을 때 편하게 들르곤 하는 독립영화관, 서로 단절된 채 살아가는 윗집과 아랫집, 서로 뒤엉킨 채 군중이 붐비는 시내 거리 등. 그곳에서 소설 속 인물들이 경험한 환상이 머릿속에 겹친다. 필자에게 일어났으면 하는 환상을 떠올려본다. 그러고는 소설 속 인물들 각자의 쓸쓸함을 함께 떠올려 본다. 작가의 쓸쓸함, 필자의 쓸쓸함을 떠올려 본다. 그것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인물들은 모두 상실과 슬픔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의외의 경험을 통해 그것들을 해소한다. 묻어 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고, 대립하는 신념과 갈등해 보고, 낯선 이를 보살펴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굳세고 꿋꿋하게 견디어 낸다. 그렇게 상실과 슬픔을 안정으로 승화시킨다. 이는 곧 작가 경험의 공유이며 독자가 가시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다수의 독자를 향한 다정한 격려로 다가와 먹먹함이 필자를 물들인다.
「유령의 마음으로」에서 ‘유령’의 존재는 ‘나’의 감정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전달한다. ‘유령’은 곧 ’나‘이다. ‘유령’이 느끼는 감정은 곧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내‘가 ’정수‘를 떠나보내기까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솔직해질 수 있도록 ‘유령’이 매개한다. ’유령‘이 충실하고 솔직하게 느끼는 감정을 통해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감정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잠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작가가 주인공에게 선물한 유령처럼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작가의 상상과 그 다정함이 우리의 마음에 물든다. 이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읽어봄 직하다. 의외의 소재에 대해서 임선우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