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능력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냥 보기에는 언뜻 정말 이상적인 사회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공평하게 성공할 기회가 주어지며, 개인의 노력만으로 모든지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상적인 사회일까? 이상적인 사
회라고 답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출발선이 각기 다른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노력만으로 서울 강남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같은 분야라고 해도 손가락 까딱안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바로 성공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힘들고 아파도
잠도 못자며 미친 듯이 노력을 해 겨우 성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런 피나는 노력을 해도 성공을 못해 “그 정도 노력은 어림도 없어” 라는 소리를 들을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소소하든 거창하든 ‘행복’을 위해서 혹은 ‘행복’ 때문에 힘든 삶을 버티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민주주의도 역사적으로 생각했을 때 모든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살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이러한 행복만을 보고 살아도 시간이 부족할텐데 ‘우리는 성공을 해도 다른 사람에게 이 지위를뺏길까봐’와 같은 일 문제 ,또는 가족문제, 쓸데 없는 걱정을 만들어 생기는 문제 등 고통스럽게 삶을 만들어가는 것들이 많아 무력감과 고통을 훨씬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이러한 사회가 불공정하고 허무하고 걱정거리를 앉고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대해 무력감이 오고 살아갈 이유를 잘 찾지 못하겠는가? 저 사람은 금수저라서 그냥 태어날때부터 다 편하게 사는 것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는가? 이런 힘듦 없이 원하는 것들만 하고 그냥 눕고 먹고 편안하게만 지내는 사회가 도래 했으면 좋을 것 같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그 사회가 바로 멋진 신세계이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는 이러한 불공평함을 다 해결하고, ‘행복함’만을느낄 수 있는 사회라고 보면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멋진 신세계에서는 국가에서 ‘보카노프스키 과정’이라는 인공 수정을 통해 계급을 미리 5가지로 나누고, 그 계급에 따라 유전자 조작, 수면 교육과 같은 세뇌 교육 등을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사랑하게 만든다. 가령 똥간을 치우는 일만 계속 할 수 있는 계급이라도 미래를 위해 연구하는 계급이 더 괴로워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해야할 일이 살아있을 때 동안 영원히 정해져 있으니 행복과 안정만을 느낄 수 있으며 또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소마’라는 약이 보급이 되고, 자유로운 성생활과 스포츠, 촉감영화 등을 통해 젊음을 유지하며놀고 먹다 생을 마감하면 된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누구였든지 간에 살아있을 때는 행복했으리라는 점이죠, 지금은 누구나 행복하니까요”라는 멋진 신세계의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멋진 신세계의 문명인들은 모든 걱정, 편견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누구든지 즐길 수 있다.
이러한 파급적인 문명 세계를 내놓는 책 “멋진 신세계”는 1932년에 출간된 올더스 헉실리의소설이며, 이 작품은 20세기 초기의 사회, 과학, 기술의 발전과 급격하게 사회적 변화가 진행되는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 이 시대는 산업 혁명으로 인해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었으며, 과학적인 발견과 혁신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던 사회였지만,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자본가들이며, 인구 중 대부분을 차지 했던 노동자들은 무자비하게 착취 당했으며 보호하는 법률은 제대로 없었다. 윤리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발전만 계속했던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자본주의 시대를 비판하는 경제이론을 칼 마르크스는 내놓았다. 마르크스는 멋진 신세계에서도 나오는 인물인데 (동명이인으로 버나드 마르크스로 나옴) 이러한 멋진 신세계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스포츠나 여자나 단체활동 따위가 그의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인물중 하나로.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 라며 사용하지 않는 여분의 힘을 찾을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현재도 초기 산업혁명의 형태와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과 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윤리적인 토론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가령 ‘AI로 만든 증명사진, 정말 주민등록증으로 사용해도 괜찮을까?’ ,‘딥페이크 관련 범죄사안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부터 시작해서 어디까지 인공지능을 발전 시켜야 인간과 공존할 수 있을까? 정도의 큰 범위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경고성을 나타내기 위해 작가는 그 시대에 이 책을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멋진 신세계가 겉으로 보면 과학이 극도로 발전한다면 이뤄낼 수 있는 최고의 걸작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불행할 권리’를 잃게 된다는 것을 간과한다. 불행한 권리를 잃어 거기서 오는 자기 성찰과 동기부여의 욕구를 잃어 버리며 인간성은 없어져버리고 기계화가 되어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영화 ‘이퀄리브리엄’과도 비교가 가능하다. 이 영화에서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치료약을 발명하여 ‘전쟁’과 ‘증오’라는 단어가 사라지며, 자아에 평온이 오는 계기가 된다. 멋진 신세계도 어릴 때부터 ‘자기의 직업은 세상 무엇이랑 바꿀 수 없다 ’와 ‘만인은 만인의 소유이다’ 라는 것을 세뇌 당하는 것과 소마 라는 마약을 통해 자아는 안정감을 느낀다. 이는 사람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유사하다. 하지만 소소한 것이든 거창한 것이든 ‘행복’하기 위해 인간들은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안정감만을 느끼는 사회라면 삶은 정말 무의미 할 것이다. 개인이 태어나서 커온 사회나 타고난 기질로써의 욕구를 해소하고 성취할 수 있는 삶은 없을 것이고 그 세계로써의 부품으로만 쓰이는 전체주의적 면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각 개인마다 다른 불안감을 느껴 더 열심히하는 동기를 얻고, 무언가 성취하고, 사회를 뒤바꾸고, 그곳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쟁과 증오, 질병 같은 것들은 당연히 따라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욕망은 역사적으로 교훈을 남겨주기 때문이다. 다양한 질문을 던져주는 멋진신세계를 이렇게 알아보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