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는 세계관의 설명에 대한 것으로 막을 연다. 이 책의 세계에서 사람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교육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이곳의 사람들의 기본상식과 배경지식, 사고방식에 대해 설명해 준다. 설명이 끝난 후 ‘버나드’와 ‘레니나’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실제로 사람들이 지식 이후의 생활에 대한 것으로 말을 이어나간다. 이들이 고통받을 때 무엇을 하는지, 성생활은 어떤지에 관한 모습을 보여주고 주인공인 존을 소개한다. \”야만인 보호구역\”의 생활양식과 존의 어머니인 ‘린다’, ‘존’을 소개하고 이후 존을 세계국으로 데려온다. 존의 사고방식과 세계국의 사고방식이 서로 뒤엉키며 존은 고통받고 결국엔 존의 자살로 작품의 막을 내린다.
책에서 소마는 스트레스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대가 없는 행복을 주는 것 같은 물품으로 묘사된다. 이와 비슷하게 현대 사회에서 쇼츠와 같은 소셜 미디어가 소마와 같은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쇼츠는 아무 생각 없이 몇 시간 동안이나 보게 되는 중독성,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스트레스로부터 쇼츠로 도망친다는 점에서 도피성을 가진다. 때문에 쇼츠와 소마는 서로 비슷한 효능을 주는 존재이다.
소마와 쇼츠는 모두 순간적인 쾌락과 해방을 약속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시간에 대한 낭비와 자기 주도력이 약해지는 점 또한 약속된다. 때문에 쇼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볼 필요가 있다. 쇼츠가 독자에게 주는 것이 과연 단순 행복감만을 주는지 오히려 독자에게 해가 되고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았는지 소마와 비교하여 생각해 본다면 이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현실의 삶 자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존이 고통받는 이유는 세계국과 야만인들 사이의 사고방식과 배경 지식의 차이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고방식과 배경 지식은 완벽하게 정해진 것이 아닌 누군가가 학습시키고 주입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의 주입으로 멋진 신세계의 존은 지나친 자유를 알게 되면서 공포와 충격을 겪게 된다. 그는 자신의 금기시되던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을 보고 역겨움을, 정작 자신도 저들과 다르지 않음에 괴멸감마저 느낀다. 이와 정반대로 이퀼리브리엄의 주인공인 존 프레스턴은 새로운 생각의 주입으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되다. 아침 햇살, 강아지, 현학적인 책의 문장들을 보며 행복을 느끼게 된다.
두 주인공 모두 새로운 생각이 주입되었으나 결과가 상반되게 나오는 것은 오로지 두 주인공의 해석과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존처럼 새로운 생각에 대해 저항한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프레스턴처럼 그저 받아들인다면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요한 것은 새로운 생각의 유입 그 자체에는 선도 악도 없다는 것이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할 것이냐 즉 개인의 판단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 중 악하거나 선하다고 느끼는 것이 나의 어떤 판단과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독자의 판단을 통해 이 책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이 책의 핵심적인 포인트들 중 하나이다.
이 책에서의 놀라운 점은 과거에는 세계국이 디스토피아적인 곳으로 이견 없이 받아들여졌으나 현대 사회에 들어와 오히려 유토피아 가깝지 않냐는 의견이 나옴에 있다.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일반적인 사고가 달라진 것이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 ‘해도 괜찮아’, ‘자존감 키우는 법’과 같은 텍스트와 같이 비교하는 심리는 가중되고 공동체적인 삶보다 개인주의적인 1인 가구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면서 스트레스 없고 얽매이는 것이 없는 세계국이 이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책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인간에게 시대에 따라 스트레스가 다르게 해석되며 우리 사회가 세계국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회적 통념과 스트레스를 상관관계에 대한 의문도 함께 가지게 만들어 독자에게 독자 나름의 해야 할 일 준다. 이는 독자가 이 책에 더욱 능동적으로 몰입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책의 제목인 ‘멋진 신세계’는 책에서 가장 뒤틀려 해석되는 말이다. ‘멋진’이라는 말을 통해 긍정적 단어와 ‘신세계’라는 판타지적 단어를 사용해 이 책을 통해 맞이할 세계가 아름답고 행복한 세계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읽어갈수록 이는 세계국 사람들만의 멋진 신세계임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책의 제목을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궁금증과 생각할 것들을 던진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작가는 ‘이 책의 완성은 글을 읽는 것이 아닌 글을 어떻게 해석해내느냐에 달려있다’라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독자가 세계국의 사고에 따라 효율성과 단순 행복에 중점을 두어 이 책을 해석한 사람이라면 이 책은 ‘조금은 뒤틀렸지만 현실 세계보다는 이상적인 국가’가 될 것이고 인간성과 본연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사람이라면 ‘효율을 위해 인간을 버린 국가’로 해석이 될 것이다. 개인의 해석에 따라 국가의 정체성이 어두운 쪽이나 밝은 쪽으로 해석된다는 점으로 볼 때 이 책의 제목은 작품 핵심 내용과 연결되며 이 작품의 깊이와 다양성을 강조하는 제목이다.
이 책은 계속해서 생각할 여지를 던지는 책이다. 하지만 사회를 지탱하는 구조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계급을 통해 서로를 비교해 가며 자신의 위치에 안도감을 느끼는 구조 자체는 좋았으나 그 이상의 장치가 없어 외부에서 온 야만인 존 한 명에게 사회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이 모습은 세계국의 사회 구조가 지나치게 빈약하고 나약하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다른 설정이 치밀한데 비해 설정이 지나치게 쉽게 무너진다는 인상을 준다.
때문에 존이 단순히 세계국을 여행하는 것을 주제로 글을 썼다면 하는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들게 된다. 존에게 세계국의 문명에 대해 여행하는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가며 존이 자연스러운 흐름 속 세계국의 뒤틀림을 깨닫고 철저히 반항하는 것이 훨씬 더 부드럽고 동시에 역겨움을 일으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성 상실’에 대해 더 잘 나타날 것이며 독자 자신에게 “자연스럽지만 뒤틀린 무언가가 너에겐 없는가?”하는 질문을 던져 이 책을 해석하기 더 나은 방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총론적으로 이 책은 현대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쇼츠와 소마를 연결 지어 현대 사회의 특징을 비추어 볼 수 있고, 세계국과 이퀼리브리엄의 주인공의 상반된 반응을 통해 판단과 해석에 대한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작가는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을 통해 단순한 제목이 상의 메시지를 나타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가지는 주제의 무게감에 비해 세계관 구조 자체의 허약함이 드러남에 아쉬움을 느낀다.
소설의 아이러니함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단순히 이야기를 이해함을 넘어서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기쁨을 느끼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 “멋진 신세계”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