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언제나 우리 편일까?
사학과 2101450 김은기
–미국은 자원봉사자가 아니다(서론)
각국은 각국의 이익에 맞게 움직인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을 너무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동맹국이고 6.25전쟁 당시 큰 도움을 준 나라이기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우리를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지원에서 기대했던 것은 미국의 자유주의 이념 수호를 위해,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 크다. 지금 현재도 미국이 우리의 가장 큰 우방국이기는 하나 지향하는 바가 다르고 세계정세가 바뀌다보면 가능성이 낮지만 미국이랑 관계를 크게 맺지 않을 수도 미국이 적이 될 수도 있다. 과거 우리가 가장 동경하고 관계가 깊었던 중국과의 사례를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근현대사 특히 해방 이후 정국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미국이 무조건 우리 편이라는 편협한 생각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3년부터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용욱이다. 저자의 활동은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해방 전후 미국의 대한 정책』, 『혁명과 민주주의』(공저), 『강압의 과학』 등의 저·역서가 있다. 책이 출판된 2021년 당시에는 6·25 전쟁기 심리전과 냉전 문화, 에고도큐먼트에 나타난 민중의 해방과 전쟁 경험, 한국 현대 민족주의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저자의 활동만 봐도 한국 근현대사 전문가임을 알 수 있다. 특히나 해방 직후의 현대사에 큰 관심이 있는 거 같다. 저자 소개에서 말하길 정용욱 저자는 사료의 확대를 통한 역사 해석의 다양성 확보, 역사 서술 주체의 확장과 역사학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흔치 않은 자료인 편지까지 관심을 둔 것으로 보인다. 생각이 명확히 드러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관적이라는 편지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당대 신문, 문학 작품, 구술 자료, 사진 등 다양한 사료와 함께 분석해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 점령기의 상황과 당대 사람들의 생각, 이후 펼쳐질 역사의 배경과 경위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과거의 SNS, 편지(본론)
‘편지’라는 뜻은 상대편에게 전하고 싶은 안부, 소식, 용무 따위를 적어 보냄. 또는 그 글이다. 전화, 스마트폰의 발전이 있기 전에 사람들 간의 소통을 담당하던 것은 ‘편지’였다. 지금은 카카오톡, 인스타, 문자 등으로 소통하지만 당시에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었던 수단이 편지였다. 또한 책의 표현대로 편지는 ‘당대인들이 그들 자신의 표현으로 자신보다 영향력이 큰 목소리나 그 시대의 주요 사건들을 향해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시선’이다. 보통 사람들, 일반 민중들의 인식까지 다양한 주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었다. 독립을 한 것이 아니라 해방이 된 것이다. 해방 이후부터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정부가 수립되는 1948년 9월까지 한반도의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이북에는 소련이, 이남에는 미국이 점령했다. 일본의 패망으로 한국인들은 일본 제국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되었지만 동시에 한국을 점령한 외국 군대 아래에서 실질적 독립과 새 국가 건설을 도모해야 했다. 이 시기는 한국 현대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남북 분단과 6.25 전쟁의 배경을 형성했다.
이 책은 해방 직후 한국인들이 해방과 점령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했는지 알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의 편지가 증언하는 해방 이후 미국 점령기 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가 수집한 편지는 미국 국립 문서관의 자료로 점령기 한국인의 정치와 삶, 민심 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점령 당사국의 생각도 볼 수 있다. 미군은 편지가 기본적인 사회적 소통 수단인 만큼 그것을 분석하면 남한의 정치, 사회, 경제, 사회관계와 인간 활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검열 전담 기구를 설치해 편지들을 검열했다. 이 기구는 한국인 정치가들 또는 정당, 단체들을 중요도에 따라 분류하고 우선적으로 감시했고 보통 사람들의 편지도 일정 비율 임의추출해서 검열했다. 편지 검열을 통해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의 여론 동향, 정치인들의 동향을 파악하려 했고 이를 자신들의 노선에 맞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연합국에 의해서 광복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반감이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본인들이 미국의 원폭을 맞고 패전국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정 통치에 우호적이었다는 것을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오우치 하나코라는 일본 여자가 맥아더 원수에게 보낸 편지로 알 수 있다. 식량난을 겪으며, 밥을 주지 않을 거면 천황제를 폐지하고 대신 미군정이 식량을 달라는 내용이 있었다. 일본에서 이렇게나 미군정에 우호적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일본은 천황제를 기반으로 하는 군국주의, 제국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천황은 신격화되었기에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이러한 발언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고 전후 일본의 지배층과 체제에 불신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다른 이유는 오랜 기간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를 받아서 외세 지배에 큰 반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군정으로 인해 친일 청산, 분단, 주체적 국가 건설 등이 방해 받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 일본인이 맥아더장군에게 보낸 편지로 일본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종전 후 독립의 영예를 얻었다고 하지만 진정한 평화가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한 자는 일부일 뿐이고, 일반 인민은 다수가 빈곤한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 의해 병합되어 안정을 얻어 살던 때가 행복했다고 깨닫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적었다. 이 편지에서 전쟁과 식민 지배에 대한 죄책감, 부채 의식은 전혀 없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예찬한다. 일본의 한 여고생이 조선인들을 향한 혐오감을 표출한 편지로도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볼 수 있었다. 잘못된 교육과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볼 수 있는 사례였다. 미군의 안정적인 통치를 위해 전범국 일본에게 죄를 묻지 않은 것이 아직까지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조봉암이 조선공산당 서기 박헌영에게 당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서신을 썼는데 미군이 이것을 입수하고 그것을 미군정의 정치 노선에 맞게 그 편지를 밝히는 시기를 저울질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미군정은 이 편지를 작성하고 한 달 뒤 1차 미소공위가 결렬되기 하루 전날 우익 계열 신문사 네 곳에 흘렸으며 이후 좌익에 대한 탄압이 노골화되었다. 미군정은 자신들을 향한 비난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고 좌우익의 갈등을 조장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례를 보고 미국이 우리의 편이라는 순진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은 미국의 편인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적이 될 수도 있다.
–누구의 나라인가?(결론)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에서 해방을 이렇게 말했다.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 이는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문제가 한국인들에 의해 해결되지 못하고 일본의 패망을 보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고뇌와 슬픔이 담긴 말이었다. 외세의 개입으로 결국 주체적인 국가 건설이 늦어지고 통일 국가 건설이 실패하였다. 이 책은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인과적인 상황과 한국인의 주체적 노력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야기 해준다. 이 책을 통해 편지가 가지는 역사적 가치와 활용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특징은 사료를 풍부하게 인용하여 한 가지 생각에 갇히지 않게 하고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 시대를 바라볼 수 있었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해방이 된지 78년이 되었다. 미군정의 통치가 시작된 1945년이 과연 해방이 됐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는 벗어났다. 이 시대에 생긴 위안부, 강제 노역 문제, 친일파 문제는 여전히 윤리적인 차원에서 큰 문제가 되어 있고 국민적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남북 분단의 문제는 여전히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모든 걸 바로 잡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앞선 세대에서 바로 잡지 못한 정의를 최대한 바로 세우는 것이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