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드라마를 보면 필수의료라 불리우는 바이탈과(흉부외과,응급의학과,소아과,산부인과 등)에서 일하는 의사의 모습을 너무나도 멋있게 묘사한다. 생명을 어떻게든 살리겠다는 신념을 가진 실력 있는 의사가 어려운 케이스의 환자를 살려내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나 또한 그런 모습에 깊은 감명을 느끼며, 실제 바이탈과 의사들의 모습은 어떨지 호기심이 일었다. 그렇게 찾은 책은 응급의학과 의사인 저자가 본인이 직접 겪은 일을 에세이로 엮어 생생한 의료 현장의 모습을 묘사한 ‘만약은 없다’ 라는 책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으니 드라마에서 묘사되던 낭만은 없었다. 낭만 대신 채운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담담히 수 많은 환자를 진료하며 매일매일 딜레마를 겪는 의료인들이 보였다. 죽고자 하는 사람을 어떻게든 살리려는 사람과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살리려 했지만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의료사고 위험, 진상환자, 수 많은 죽음 속에서 무뎌지는 의사와 무뎌진 본인을 혐오하는 의사 그리고 사지를 넘나드는 장소에서 극한의 감정이 오가는 응급실… 부와 명예를 얻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의 통념이 그 얼마나 속물 같은 생각인지 이 책의 글을 읽어 내려가며 괜시리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특히 응급실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의료 시스템 상, 환자를 진정으로 치료하는 의술이 아닌, 물리적 치료와 몇분 남짓의 피상적 위로 밖에 없다는 것에 좌절하는 글쓴이의 모습을 읽어나갈 때는 더더욱 그러하였다.
책을 읽으며 필수의료과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대한민국 필수의료가 과연 이분들의 헌신만으로 지속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모두가 이국종 교수님처럼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실제로 책의 저자는 본인이 쓴 에세이를 부모님이 보시고는 ‘자식을 사지에 몰아 넣은 부모가 된 것 같다’ 라는 고백을 듣고는 불효자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미어졌다 고백한다. 개인의 희생으로만 이루어진 시스템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생각한다. 실제로 산부인과와 소아과는 거의 멸망 직전이라 지방 도시에서는 2시간을 차 타고 가도 산부인과를 갈 수 없다 하고, 중환자실이 없어 병원을 돌다 구급차에서 살 수 있던 환자가 죽은 케이스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응급실 만큼, 죽음의 목전에 선 사람과 그 사람을 살리려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삶과 죽음의 실존 문제가 가슴에 와닿는 곳은 없는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세계 최고의 의료제도를 가졌다고 자화자찬 하는 모습 뒤의 한국 의료의 어두운 면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의료 최전선의 생생한 현실을 따뜻하지만 담담한 문체로 서술하는 이 책의 일독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