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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국제정치의 오늘과 과거 그리고 미래
저자/역자
피터 자이한
출판사명
김앤김북스
출판년도
2019-01-29
독서시작일
2023년 11월 13일
독서종료일
2023년 11월 18일
서평작성자
이*찬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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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봉쇄된 해안루트를 뚫으려는중국의 일대일로 정책 – 현재 중국은 말라카 해협만 막혀도 국가 생존이 어렵다>

위 책은 국제정치를 지정학적으로 풀어서 오늘날의 세계 정세를 설명해준다. 지정학이란 어떤 국가가 속한 지리적,정치적 위치에 따라서 그 국가의 외교적 포지션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예를들어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천혜의 바닷길인 말라카 해협의 요충지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제국주의 시절 이후로 지금까지 아시아 무역과 금융의 허브가 되었다. 과거 르네상스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던 베네치아 또한 마찬가지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던 지중해 항구도시인 베네치아는 중계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아올렸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이 무역길을 막고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되며 무역의 중심지가 옮겨가자 베네치아는 주도권을 내주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자원의 흐름과 지정학적 위치는 해당 국가의 중요성을 높이기도, 낮추기도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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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의 원유생산량 – 1980년 이후 줄어든 생산량이 2010년 이후 셰일혁명으로 급증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유일무이한 패권국인 미국의 지정학적 요소는 어떨까?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토양과 자원, 대서양과 태평양 모두  맞닿은 드넓은 바다와 천혜의 항구 입지를 가진 해안, 주변에 위협할 만한 강대국이 존재 하지 않는 위치 등등, 미국과 대등한 지정학적 요소를 가진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이 가진 유일한 약점이 있었다. 바로 석유이다. 석유가 없다면 현대문명이 성립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석유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다. 하지만 미국은 1980년부터 자국 석유의 고갈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석유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는 미국이 왜 중동에서 그동안 군사개입을 포함하여 강도 높게 영향력을 투사해 왔는지 말해준다. 그러다 2010년 셰일혁명이 터지게 된다. 고갈되었다고 생각되던 미국의 석유 유전지대에서 새로운 시추방법을 통하여 과거 보다 더 많은 석유를 캐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엄청난 투자개발을 통하여 현재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생산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었을까? 바로 미국에게 중동이 더 이상 과거처럼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과거에는 본인들의 자원 수급을 위해서라도, 냉전 중 자신의 동맹국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세계 무역의 흐름과 중동 정세의 안정에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였지만 냉전도 끝났고 자원 마저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되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국가의 국민 입장에서 큰 이익도 없는 해외에서 자국민이 죽거나 큰 돈이 쓰이는 것을 언제까지고 용인할 리가 없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각국에 주둔한 미군철수를 외치고 동맹국에 무례한 트럼프가 과연 언론들의 말마따나 일시적인 또라이의 변죽일까? 미국의 충격적인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과연 우연일까? 최근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우연일까? 50년 이상 이어져 온 국제정세의 게임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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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한다는 중국의 지정학적 요소는 어떠할까? 지난 20년간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내고 중국몽을 꿈 꾼다지만 지정학적 요소는 그리 좋지 않다. 먼저 미국과 달리 자급자족이 되지 않는 구조이다. 자국 석유 매장량은 많지만 대부분이 주요 도시들이 모인 동부 해안과 멀리 떨어지고 개발도 안된 사막지대이다. 게다가 채산성도 좋지 못하며 현재 증가하는 수요로는 택도 없는 공급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주변에 강대국이 많아 미국과 달리 방어하는 것에만 많은 군사적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해안 루트가 언제든지 막힐 수 있다는 점이다. 위의 지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동부 해안은 한국과 일본에 의하여 막혀 있고 남중국해는 필리핀과 대만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둘러쌓여 있으며 중국의 에너지 수입 루트 중 가장 중요한 곳은 말라카 해협 마저 미군 혹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에 의해 언제든지 봉쇄 당할 수 있다. 즉, 자급자족이 안되는 나라에게 있어 나의 목숨줄이 상대방에게 언제든지 잘려나갈 수 있는 형국이다. 괜히 중국이 헛돈을 쓴다며 욕을 먹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거금을 쓰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활로를 뚫겠다는 발버둥일 수 있다. 그런 중국에게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는 대만이다. 일단 대만만 뚫는다면 적어도 태평양을 향한 길이 열리며 같은 중국인이라는 나름의 명분도 존재한다. 이것이 현재 중국과 미국이 대만을 두고 부딪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뚫고 싶은 자와 막고 싶은 자의 대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왜 대만 문제가 한국에게 중요한 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애치슨 라인>

한국의 지정학적 요소를 보자. 냉정히 말해 한국은 냉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에 속한다. 한반도로 몰려오던 중국과 소련이라는 공산주의 국가의 견제를 위해 미국은 수많은 자국 병사의 희생과 물자 지원을 통해 한국을 지켜내었다. 물론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과 도전정신이 세상에 유례 없는 경제발전에 큰 공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군사적 도움과 무역에서의 혜택이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냉전은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났으며, 지난 50년간 이어져 온 게임의 룰은 바뀌었다. 현재 미국 입장에서 한국이라는 동맹국의 가장 큰 필요성은 크게 반도체 제조국이라는 공급망과 대중국 견제 전초기지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을 통하여 한국의 반도체와 2차전지 회사들에게 직접 미국으로 투자하라며 리쇼어링을 주도하고, 한국의 첨단제조업 비중을 미국으로 옮겨가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중국 견제 차원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일본과 비교해 봤을 때 계륵에 속한다. 중국의 동쪽 바다를 막는 것에 굳이 한국이 없어도 일본이면 충분하다는 얘기이다. 모든 국가는 외교적 정책을 수립할 때 이득과 비용을 계산한 뒤 움직인다. 점진적이지만 한국의 동맹국으로서의 이득은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에서 대만 문제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

위에서 언급했듯 미국은 자급자족이 가능해진 이후, 과거보다 자국 우선주의 혹은 고립주의 노선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 반대로 중국에게 남중국해를 위시한 해양진출 루트 확보는 본인들의 생명이 걸려있다 느낄 정도로 절박한 문제이다. 미국은 과연 자국의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대만을 지킬 것인가. 만약 대만을 포기한다면 한국을 미국이 지켜줄 것인가. 실제로 과거 미국은 애치슨 라인으로 불리우는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하는 실수를 함으로써 소련과 중국 북한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 6.25가 일어나게 만든 간접적인 원인을 만든 적이 있다. 

이같은 미중 갈등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를 통하여 배우고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당시 동북아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명분을 좆다 큰 굴욕을 당했던 병자호란의 치욕과 더 가까이에는 영국과 미국의 묵인 그리고 러시아의 패배로 인하여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슬픈 역사 또한 가지고 있다.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영국과 미국이 일본의 한반도 합병을 묵인하고 러일전쟁의 패배로 유일한 일본의 견제 국가였던 러시아가 무너지자 그대로 조선이라는 나라는 망국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고종이 보낸 헤이그 특사야 말로 비극의 정점이 아닐 수 없다. 이미 헤이그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기 2년전 러시아의 패배로 모든 것이 끝이 났었던 것을 조선 수뇌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역사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으며 냉혹하게 실리를 좆는 국가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물론 우리나라 역사에도 지정학적 치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서희의 외교담판이다. 당시 동북아에서 고려의 지정학적 장점과 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던 서희는 뭇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호통과 글솜씨\’를 통하여 강동 6주를 얻어낸 것이 아니다. 송나라와의 전쟁 중 배후의 위협이 가장 두려웠던 거란의 약점을 잘 이용하여 여진족을 견제해주고 거란을 황제국으로 조공하겠다는 약속을 통하여 전쟁도 막고 땅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거란 같은 오랑캐에게 황제로서의 예를 갖췄다는 점을 두고 굴욕적인 외교라고 폄하할 지 모르겠지만, 그 결과, 후에 있을 2차,3차 거란 전쟁에서 강동 6주를 통해 나라를 지킨 점을 생각하면 국제 정치에서는 실리가 훨씬 중요하지 명분을 위한 명분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특히나 조선이 망국으로 나아갈 때 조차 도끼를 들고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던 무리를 생각한다면…

이 책이 말하는 지정학적 설명이 모두 옳은 말은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미국의 관점에서 쓰여져 있다 보니 과장된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와 국제정치를 도덕의 차원에서 바라 보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적어도 신선한 관점으로 현재와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독을 추천드리는 바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프레임이 많을수록 이 혼란한 시기를 더 슬기롭게 헤처나갈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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