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존경, 이슬아
어쩌면 그동안 나는 \’이기적인\’ 글쓰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나만의 자아의 표출과 생각 정리. 글이 곧 \’나\’고 \’내\’가 되는 세상이 글을 쓰는 동안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다만, 이슬아 작가의 <깨끗한 존경>을 통해 다각화된 시선을 전달받으면서 글이라는 것은 더 많은 걸 반영한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었다. 여기서 전달받았다는 것은 네 명의 인터뷰를 봤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주제와 조금 더 가깝고 깊게 연결되었다는 뜻이다. 글이 곧 거울인 것은 맞지만 꼭 거울이 나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나\’의 국한된 시선과 감각이 아닌 타인의 세상을 널리 눈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용기를 주는 책이다.
시선의 이동(이슬아X정혜윤)
얼마 전, 나는 청년 공간에서 열렸던 글쓰기 수업에서 \’공간감\’에 대해 배웠다. 내가 만약 카페에 앉아 글을 쓰기로 했다면, 지금 당장 내 앞에 놓인 머그컵과 노트북에 대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맞은편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연인들, 신선한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나와 같이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공간감을 확장한다. 이 확장은 독자로 하여금 더 풍부한 상상을 할 수 있게, 책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새로운 글쓰기 기술을 배웠으니 \’나\’를 중심으로 하는 공간을 넓히기 바빴다. 정혜윤 감독은 이 시선의 이동이 타인으로 향해 있는 사람이었다. \’힘듦\’을 말하지 않는 게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라니, 책을 펴고 첫 인터뷰를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언어 습관과 공간의 확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는지를 알게끔 한다. 당신은 어느 시선을 가지고 있냐고
정: 깨끗이 존경하는 거예요. 저는 연민으로 잘 못 움직여요. 저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존경심이고 감탄이에요.
그들은 슬프기는 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저보다 훨씬 괜찮고 위대한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유족들을 불쌍하다고, 안 됐다고 착각해요. 절대 아니에요. 너무 슬프지만, 사람이 저렇게까지 용감할 수 있구나, 저렇게까지 깊을 수 있구나, 하는 존경과 감탄이 저를 움직이는 거예요. 사실 저 이타심 별로 없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저한테 역시 좋은 일임을 아는 거죠. 어디에 샘이 있는지 아는 동물처럼, /44p
만드는 것, 전달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슬아X정혜윤, 유진목)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인터뷰이인 정혜윤 감독님과 부산 영도 \’손목서가\’를 운영하고 있는 유진목 작가는 그러한 책임감에 말한다. 최근에 나는 윤사라 작가님의 <사이를 잇는 감각으로> 책을 펴내면서 하셨던 이야기를 들었다. \’대화\’라는 것은 이야기를 주고받음을 뜻하지만 요즘 우리는 대화의 의미가 퇴색된 것 같다고. 우리는 대화를 잘 하고 있는가? 나는 무수한 독백 만이 만연한 듯하다. 소셜 미디어만 봐도 일방적인 \’좋아요\’와 \’스토리\’, \’피드\’ 등등… 타인의 이야기에 대해 더욱 \’나\’와 같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게끔 한다. 앞서 언급한 윤사라 작가님의 말을 빌려올 때도 굴곡없이 그대로 적었는지 의심이 든다.
창작하는 이에게 무언가를 만드는 것과 전달하는 것에 어떠한 굴곡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 책임감이 있다면, 말하는 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진심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 전달되도록 눈을 맞추는 것. 나는 사람들과 더 \’대화\’라는 것을 해보고 싶다. 온 진심을 다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