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행으로 인한 외상으로 모국어를 상실한 주인공 한주가 등장한다. 한주가 도쿄의 한 서점으로 첫 출근하는 날을 상기하는 장면으로 내용이 전개되는데, 책을 펼치고 초반 몇 페이지 정도는 그저 답답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여성 독자가 접하는 소설 속 데이트 폭력은 언제나 맘편히 읽히지가 않는다. 내용 중 한주가 오직 일본어만을 남긴 채 도쿄로 건너와 만난 노인과의 대화에서 노인이 한주에게 털어놓는
“나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꼬치구이를 팔고 있습니다.”
“지금은 꼬치구이를 팝니다. 그리고 인생의 어떤 시절엔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이 문장들을 읽은 순간, 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하고 있는 것.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삶을 살고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주가 노인, 노인의 부인과 함께 팥앙금이 든 빵 먹으며 아사쿠사를 걷던 장면이 몇 년 전 봄에 어머니와 찬 음료를 한 잔씩 손에 쥐고 느리게 아사쿠사 걷던 기억이랑 겹쳐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두 번째 장에서는 ‘그녀는 자신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희미해지는 것처럼 느꼈다. 그런 그녀에게 각각의 언어가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이 카페는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떠남이 예정돼 있는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그녀 또한 그다지 특별하게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이 문단 전체가 바로 최근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입장으로서 와닿았다. 일본에 가서 일본어를 못 하고 중국에 가서 중국어를 못 하고 미국에 가서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 해도 잘못된 게 아니다. 이유는 이곳에서 오랜 시간 머무를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그곳의 언어를 현지인처럼 내뱉지 못 하는 나는 당연하고, 당연한 만큼 차마 자각하지 못 했던 사실이긴 하지만 타지에서 겪는 상실감 비스무리한 감각을 직접 경험해보았기에 문단을 계속 통째로 곱씹어보았다.
후반 챕터 <오타루의 집>의 한 문장인 ‘그녀는 소금사탕의 빈 봉지도 따로 모아둘 만큼 기쁜 마음이 되었다.’을 읽고
남에게 받은 자그마한 물건의 포장까지 모아두는 마음
수업 시간 선생님 몰래 친구들과 주고 받던 쪽지들을 폰케이스 뒤에 끼워 모아두는 마음
어릴 적 엄마 아빠가 써주신 편지들을 차곡차곡 모아두는 마음
온라인 쇼핑몰로부터 받은 구매 감사 엽서들을 곧바로 버리지 않고 서랍에 모아두는 마음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완독 후 머릿속에 부유하는 하나의 단어는 \’오해\’였는데, 작중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이 저마다의 삶을 굴러가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진실 중 무엇이 오해이고 겪는 수많은 오해 중 무엇이 진실일까 하는 상념을 잠시동안 들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