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그것은 분명, 길몽이었다.\”
부엉이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꿈을 꾸다 깨어나 다급하게 꿈의 해몽을 찾아보는 서우,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지만
대부분의 해몽이 죽음을 암시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 서우는 그 꿈을 길몽이라 명명하였다.
서우는 과거의 일로 인해 방에 스스로를 가뒀다. 가족과는 문자로 대화를 하고, 밥이나 화장실은 가족이 집에 없을 때 해결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연명하던 중
‘센터’가 합법화되었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강조되면서 안락사 허용을 요구하는 단체가 생기는데라이브 방송을 켜두고 자살을 하는 등의 희생으로
결국 안락사가 허용됨과 동시에 안락사를 위한 ‘센터’가 생겨난 것이다.
서우는 엄마에게 안락사 센터에 보내달라고 문자를 한다.
처음엔 아들을 어떻게 그런 센터에 보내주겠냐고 반대했지만,
이웃집 명문대 학생이 센터에 보내주지 않겠다는 부모님과의 갈등 끝에 투신자살을 선택한 사건을 계기로
센터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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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마음이 아팠다
집을 비운 사이 혹여나 아들이 자살하지 않았을까 문을 두드려 생사를 확인하고,
굳게 닫힌 아들의 방문 앞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하고,
투신한 여대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막는다고 되는 게 아닌 거지?”
하며 센터 입소를 허락해 주는 과정들에
서우 엄마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내가 같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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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그래서 더 아픈 건지도 몰라. 삶이, 진짜 살아있는 삶이 너무나 간절해서.\”
매일이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분명 사는 게 죽는 것보다 힘든 사람도 있다.
안락사는 끊임없이 찬반이 나뉘는 주제이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안락사가 허용이 됐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 고통받으며 사는데
죽음까지,
삶의 마침표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찍지 못하는 것이 정말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인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서우는 계속해서 안락사를 미루고 조금 더 고민할 시간을 갖는 \’연장\’을 했을까?
삶에 대한 의지를 찾고 퇴소를 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지만
어떤 선택을 했든 간에,
서우도 태한이도, 또 마음 한 켠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안고 사는 사람들도, 그저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