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헤르만 헤세가 1906년에 수레바퀴 아레서를 발표한 뒤 무려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세상은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근본적인 부분은 책이 쓰인 당시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수레바퀴 아래의 주인공 한스는 똑똑하고 성실한 전도유망한 아이였지만, 주변의 기대에 짓눌려 원치 않는 삶을 강요 받았고 결국 적응하지 못한 채 이른 나이에 비침함 죽음을 맞게 된다.
한스는 어른들의 욕망이 낳은 희생자이며, 숨을 돌릴 여유조차 주지 않는 경쟁 사회의 피해자이다. 헤세는 이런 한스의 안타까운 최후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헤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레바퀴 아레서가 고전이 되어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은 들어본 명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기술적으론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지만 정작 그 내면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썩어 있다.
얼마 전, 새벽 1시쯤에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교복을 입은 피곤에 찌든 중학생을 보면서 그런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사회의 경쟁은 더욱 더 심해졌고, 대다수의 아이들은 여전히 어른들의 욕망에 의해 제 삶을 통제당하고 있는 것 같다. 성공이라는 가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려가며, 그저 앞만 바라보고 쉼 없이 달려가고 있다.
성공을 위한 노력이 전적으로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그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구제책이 제대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경쟁에 지친 사람들을 제대로 돕지 못한다면 결국 또 다른 한스가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스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을 아이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저려온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수레바퀴에 깔려 숨을 헐떡이는 그들을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인간 사회의 극복할 수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한 평생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우리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또 다른 한스가 생기지 않도록. 제 꿈 한 번 펼쳐보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젊은이가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끝없이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이제는 멈춰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