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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화되지 않은 아름다움, 진정한 자아
저자/역자
강희영
출판사명
문학동네
출판년도
2021-07-22
독서시작일
2023년 08월 26일
독서종료일
2023년 08월 30일
서평작성자
이*은

Contents

패션에 관한 나의 해학이 결코 깊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패션의 세계를 둘로 나누어보자면 유행을 이끄는 자와 유행에 편승하는 자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패션계에서 유행은 돌고 돌며, 누군가는 새로운 것 혹은 이전에 한차례 유행했던 것을 들고 나타나 화제를 일으킨다. 그럼 대중은 그에 반응하기라도 하듯이 그 스타일을 따라 입고, 여기저기에서는 그와 비슷한 상품들이 쏟아져나온다. 옷을 한번 사면 잘 버리지 않고 오래도록 입는 나에게 돌고 돌아오는 패션계의 유행 패턴은 오히려 달갑게 느껴지기마저 했다.

소설 <녹색 커튼으로>에 나오는 주요 인물은 총 두 명이다. ‘다민’과 ‘차연’. 다민은 대중의 관심과 여러 패션계 인사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델로, 유행을 이끄는 쪽에 해당한다. 차연은 그런 다민과 우연히 쇼 이후 골목에서 만나게 된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진작가로, 유행에 편승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끄는 쪽은 더더욱 아니다. 다민과 만난 뒤로 차연의 사진은 인정받기 시작해 자신과 일을 하자고 제안하는 회사를 제안하게 되었으나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아니, 차연은 오히려 자신의 사진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유명세를 타면 좋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다민은 아름다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다민을 따라 차연 역시도 예쁨과 아름다움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예쁨’과 ‘아름다움’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노을이 예쁘다.”라고 말할 때나, “노을이 아름답다.”라고 말할 때의 의미가 상통하듯. 대충 비슷하겠거니 여겨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둘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예쁨은 단순히 예쁜지 아닌지가 나뉘어 명백한 판단기준이 되지만, 아름다움은 그렇지 않아 함께 나눌 수 없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미추의 원리에 따라 아름다워질수록 추해질 수밖에 없지만 예쁨은 그렇지 않다. 예쁨은 오만하게 제 상태를 유지하며 미추의 경계를 갈라놓는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고.(p.135)

그래서 다민은 ‘예쁜 것들을 모아놓으면 계속 예쁠까’라는 질문에 반박하기라도 하듯 예쁜 것들을 모아 보란 듯이 망쳐놓고자 한다. 그 방식은 차연에게 도움을 얻었고, 단추가 있을 자리에 지퍼를 단다든지, 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단추를 단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생각대로 열심히 망쳐놓은 결과물을 다민이 직접 대중 앞에 선보였고, 예상과 달리, 어쩌면 예상대로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고 그 옷을 소장하길 원했다. 결국 새로운 유행을 만든 것일까, 아무리 추한 것을 만들어온다 한들 입는 이에 따라 그것의 유행 여부가 결정되는 걸까. 성공도 실패도 아닌 그 모호함 속에서 두 사람은 진정한 자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유행을 이끌고 그것을 따라가는 세상에 대해 경멸하면서.

다민의 이런 기발하고 발칙한 생각들을 듣는 차연은 그녀의 말을 쉽게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민을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다민의 말에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그에겐 오히려 힘든 일이었다. 그러므로 다민의 뜻을 이뤄주기 위해 무모하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프로젝트를 행하며 차연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다. 제 행동의 까닭을 다민에 대한 사랑에서 찾으며, 그렇게 사랑을 확신하고 있다.

사라짐으로써 영원해진다는 말은 어쩌면 모순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민은 직접 사라짐을 행함으로써 어쩌면 영원함을 실천해 보였다. 그 영원함은 단순히 패션계에서 뿐만 아니라 차연의 마음에도 적용되는 게 아니었을까. 다민이 사라졌음에도 차연은 끊임없이 다민에 대해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머릿속에서 그녀를 좇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민의 “나는 추구해야 할 아름다움 따윈 없다고 생각해.”라는 대사이다. 평소 여러 사람들의 패션과 스타일을 보면서 각자의 개성과 각자의 분위기가 있는 한 정형화된 아름다움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다민 역시도 비슷한 말을 해서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작품의 배경은 주로 해외인데,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책을 읽음으로써 대리 만족하게 되었다. 후에 소설에 등장한 곳들을 모두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작가가 표현한 파리는 매력적이고, 궁금증을 자아냈으며, 알록달록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두 사람이 이루어내는 무대는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사랑하는 이의 바람과 이상을 함께 실현해내는 둘의 모습이 진정 아름다움이 아닐까. 단순히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닌, 어느 정도의 추함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어있는 그런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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