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가장 찬란한 시절을 떠올려보세요.”라고 얼굴 모를 이가 질문한다면, 목도리를 칭칭 감고 애벌레가 되어 흰 연기를 내뿜는 겨울보다
쨍쨍히 햇볕이 내리쬐고 매미가 목놓아 울부짖는 여름의 그날들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어쩌면 가장 선명했던 그날을 ‘여름’으로 회상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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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십 년간 여름 헤이터이다. 안 그래도 태생부터 불같이 체온이 높은 것도 한몫한다. 들끓는 아스팔트 도로와 그 위로 일렁이는 공기를 지나갈 때 숨을 헙하고 참는 그 찰나, 셀 수 없는 짜증으로 머리끝까지 가득 차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도록 흘러내린다.
“지겹다, 지겨워. 언제 가을이 올까”
더운 것만이 싫은 게 아니다. 하루살이 벌레들이 길의 무법자로 차지하면 그 길이 지름길이라고 해도. 통행료를 내라고 해도 돌아서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무수한 날들에 세탁기는 휴무가 없다. 아마 여름을 제일 싫어하는 썸띵들은 에어컨과 선풍기, 그리고 세탁기일 것이다.
이런 여름 헤이터가 여름 러버가 되는 것에는 큰 이유가 없었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땅땅 소리쳤던 다섯 살의 내가
이미 여름을 평생 좋아하지 못할 사람으로 규정지어버렸기 때문이다. 시각을 넓혀보면 나는 여름을 싫어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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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가 있는 텅텅 빈 광장에 아이들의 순수한 목청으로 가득히 채워지고
생생할 정도로 바다의 색이 푸른가 하면, 산은 그에 화답하듯이 살랑살랑 바닷바람에 춤춘다.
시원한 얼음 물에 담가놓은 빨갛고 하얀 수박으로 이제야 살 것 같다며 새어 나온 웃음.
이 모든 게 좋아질 리 없다며 생각했던 건 여름 헤이터, 나 스스로가 아닐까.
그렇게 나는 여름을 변명의 여지없이 짝사랑하기 시작했고 여름 사용설명서를 알기 위해 이 튤립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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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은 늘 그렇듯 당사자에겐 화답하지 않는다곤 하지만, 여름은 배신할리가 없지. 나의 기억, 나의 추억 모든 것을 통틀어 여름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덥지만 더울수록 땀을 열심히 흘리다 보면 여름은 꽤나 들끓는 젊음을 뜻했다. 이제 가을이 오기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 정신없이 지나간 올해의 여름은 이제 안녕할 준비를 해야 한다니 다소 섭섭하기도 하지만, 시원한 얼음물 한 잔과 다시 튤립을 들으면 매미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 듯하다.
보고 있어도 그리운 마음이 이런 것이라면 안 남길 수 없다. 여름을 보관하고 싶은 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