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기사에 가려진 미시사, 마르탱 게르의 이야기
흔히 과거에 대한 서술을 보면 국가사와 같은 정치사가 주를 이루며 지배층 및 소수의 영웅과 위인들을 주제로 한 서술들이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일반 대중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들의 이야기는 왜 역사가 되지 못한 것일
까? 이는 당대의 역사 서술의 흐름에 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세에는 기독교 중심의 역사서술이 유행하며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 주요 서술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일반 대중은 역사서술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잊혀 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들어
오게 되면서 역사 서술은 주요 정치적 사건, 인물에서 벗어나 거시사에 잊힌 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기와 편지 그리고 재판기록과 같은 자료를 통해서 그들의 삶을 재현하려고 노력했고 이러한 흐름에서 힘입어 탄생한 작품이 바로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고 할 수 있다.『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란 책은 재판의 판사였던 코라스의 책을 바탕으로 마르탱 게르라는 한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게르 가족의 이동, 마르탱 게르의 결혼, 그의 여행 및 아르노 뒤 틸의 사칭과 가족의 분열, 마르탱 게르의 귀향과 재판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단순히 마르탱 게르의 행적만이 다루어지지 않고 그의 주변 인물들, 예를 들어 아내인 베르트랑드 드 롤스, 아르노 뒤 틸(일명 팡세트), 피에르 게르 등의 인물의 행적과 함께 당시의 프랑스의 다양한 관습, 여성의 지위 등의 당대의 현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마르탱 게르의 귀향』를 통해 보는 당시의 프랑스
이 작품에서는 바스크지방, 아르티카, 사자 등의 프랑스 지역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데 단순히 언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마다의 고유한 관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바스크지방의 사람들은 가족이 소유한 집을 소중하게 여겨 함부로 팔지 않았다는 이야기, 아르티카는 아들이 몇 명이든공정하게 나누었다는 이야기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귀족의 관습이 아닌 일반 대중의 관습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책의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독교의 움직임을 살펴볼 수 있다. 마르탱 게르의 사건이 일어났던 시기는 종교개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때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은 프랑스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일반 대중에게까지 퍼져나가게 되는데 롤스 가족이 신교도 예배를 위해 먼 교회까지 걸어갔다는 서술을 통해서 , 그리고 프로테스탄티즘에서 귀책사유가 남편에게 있을 경우, 장로회의로부터 이혼과 재혼을 승인받을 수 있다는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를 설명하며 팡세트와 베르트랑트의 관계의 정당화의 수단이 되었음을 밝히는 것을 통해 뒷받침한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점차 신교가 세력을 넓혀 영향력이 커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마르탱 게르의 귀향』 속 또 다른 이야기, 베르트랑드 드 롤스
『마르탱 게르의 귀향』 속에서는 또 다른 미시사, 베르트랑드 드 롤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베르트랑드는 마르탱 게르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도 그가 돌아올 때까지 정조를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등 매우 정숙한 여인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팡세트가 마르탱 게르라 칭하며
돌아왔을 때 그녀는 10년에 가까운 세월로 인해 그의 모습의 변화에 대해 넘어갔을 수 있었겠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을까? 진짜로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책의 저자도 언급하듯이 성관계와 같은 행위로 인하여 그가 진짜 마르탱 게르가 아님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이라고 인정하고 그에 대한 재판이 열렸을 때 그를 옹호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그녀가 지조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책에서 설명하듯이 여성의 이름에는 \’de\’라고 하는 소유, 소속을 나타내는 전치사가 붙는 것을 통해서 과거 여성은 남성에 존속된 존재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여성의 지위는 남성보다 낮았고 결혼한 여성은 남편에게 소속되는 것이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마르탱 게르는 갑자기 사라지며 베르트랑드는 긴 세월 동안 불안한 위치를 유지해야 했고 마르탱 게르가 돌아왔을 때 그러한 위치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러니 가짜임을 알았어도 이를 밝히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버린 마르탱 게르보다 팡세트가 책임감 있는 남편이었기에 이러한 거짓말을 저질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살펴보았을 때 그녀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부재에 살아남기 위한 여성의 주체적인 선택이자 처세라고 할 수 있으며 그녀의 행동의 이유에 대해 그녀를 탓하는 것보단 마르탱 게르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이 맞을 것이다.
■ \’진실인가? 소설인가?\’ 『마르탱 게르의 귀향』 속 문제점
여러 이점이 있는 반면 문제점도 존재한다. 먼저 책에서 당대 프랑스의 관습과 관련된 내용들이 이야기의 사이마다 첨가되어 제시되어 이해도를 높이고 있는데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는 오히려 책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르 포사의 공증인이 계
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촌락을 순회했다고 설명하며 이해를 도우려고 하나 정확한 맥락 없이 공증인에 대한 내용만 나오면서 오히려 내용 파악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정보를 전달하거나 자신의주장을 펼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글에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정확한 사료 기반이 없음에도 확정적 진술이 많다는 점이다. 여러 자료가 있고 이를 통해서 비교적 정확하게 사건의 경위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거시사에 비해 미시사는 한정적인 자료로 인해 자료 사이의 빈 공간이 많은데 이를 유추를 통해 채워나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므로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봐야 하는데 저자는 ‘베르트랑드는 아르노 뒤 틸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걸 사칭했음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감싸주었다.’ 등의 서술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당대의 프랑스의 관습과 상황들을 엮어 마르탱 게르를 비롯한 여러 인물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추측\’이라는 점이다. 이는 『마르탱 게르의 귀향』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시사가 가지는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데 앞서 설명했듯이 미시사는 자료로 채워지지 못하는 공간을 당대의 관습, 상황을 통해 유추하여 채워야 하는데 이로 인해 사건의 진실에서 벗어나 잘못 해석하고 저자의 상상력이 더해진 하나의 ‘소설’이 완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피해자\’로서의 마르탱 게르
마르탱 게르는 자신의 가족들을 버리고 떠났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으며 오히려 팡세트가 더 좋은 남편이자 가장이라는 등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물론 모든 사태의 원인이며 베르트랑드와 상시에겐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책임감 없이 떠나버린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마르탱 게르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어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결혼을 하며 책임감이 부여되었고 오랜 기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자 성 기능 문제로 인해 많은 곤욕을 치루어야 했다. 어린 나이의 소년이 이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와의 불화가 떠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여기에는 마르탱 게르의 \’자유\’라는 결핍이 터져 나온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막대한 책임감 짊어진 미완전의 소년인 마르탱 게르의 모습, 상황도 바라볼 필요도 있다.
■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 가지는 의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마르탱 게르보다는 그 주변 인물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마르탱 게르라는 한 인물의 역사 속 또 다른 미시사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 서술의 대상의 확장은 우리의 역사, 미래에 전해지는 역사를 풍
부하게 만들 것이며 이러한 흐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탱 게르의 귀향』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