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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아이란 없다
저자/역자
박지리
출판사명
사계절
출판년도
2016-09-20
독서시작일
2023년 07월 07일
독서종료일
2023년 07월 13일
서평작성자
이*진

Contents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이 책은 제목은 익숙했지만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이었다. 사실 말로 들은 것도 책이 아닌 뮤지컬로서였다. 뮤지컬 속 니스 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원작인 소설을 읽는 것을 선택했다. 이게 책을 읽게 된 동기이다. 사실 읽기 전 책의 두께를 보고 잠깐 망설였다. 85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스 영이라는 인물이 나에게 남긴 인상을 잊을 수가 없었고 300쪽이 넘어가면 두껍다고 느꼈던 내가 처음으로 자진해서 선택한 두꺼운 책이 되었다.

이 책은 영 가문이 감추고 있는 비밀로부터 사건이 전개된다. 1지구부터 9지구까지 나누어져 사람의 가치가 평가받는 공간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9지구 출신이지만 ‘12월의 폭동’을 통해 1지구로 들어와 살고 있는, 누구에게도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되는 러너 영은 니스 영의 아버지이다. 러너 영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친구를 죽인 니스 영, 니스 영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친구를 죽인 니스의 아들 다윈 영, 이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보여진다. 니스는 러너 영의 정체를 알아버린 친구 제이 헌터가 다음 날 있을 아버지의 날 행사에서 러너 영에 대해 폭로할 것을 두려워했고 그날 밤 아버지가 12월의 폭동 때 입었던 하위지구를 상징하는 후드를 통해 자신을 감춘 채 후드 끈으로 목을 졸라 죽인다. 이는 완벽히 9지구 후디가 저지른 강도 범죄라고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제이의 가족들 또한 제이의 죽음을 밝히고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이의 조카인 루미는 달랐다. 유난히 제이를 닮은 루미는 제이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파헤치고자 한다. 제이, 니스, 버즈, 이 셋은 가장 친한 친구였다. 버즈는 훗날 니스의 아들인 다윈의 친구가 되고 그에 의해 희생되는 레오의 아버지이다. 이렇게 각각의 인물들이 연관성을 가지고 이어져 있다. 문교부 차관인 니스를 아버지로 둔 다윈은 항상 그를 존경했으며 니스 또한 다윈에게 굉장히 따뜻하고 상냥한 아버지였고 그렇기 때문에 다윈에게는 어머니의 부재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다윈이 루미와 친하게 지내면서 국가 기밀 자료로 포함되어 있는 ‘12월의 폭동’ 당시 사진을 열람하기 위해 아버지의 아이디를 도용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고 그를 알게 된 니스는 다윈에게 큰 소리를 내게 된다. 그날 밤이 문제였다. 그날 밤 스트레스가 컸던 니스는 위스키 한 병을 방으로 들고 들어갔고, 다윈은 아버지에게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위스키를 들고 들어간 아버지가 걱정된다는 가정부 아주머니의 말에 아버지를 보러 1층으로 내려간다. 니스의 방문을 열었을 때 방에서는 술냄새가 진동을 하고 거울 앞에 후드를 뒤집어쓴 니스가 서있었다. 니스는 거울을 보며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니스 네가 제이를 죽였어.’라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제이를 어떻게 죽였는지 자백을 하고 있었다. 그걸 본 다윈은 충격에 휩싸이게 되고 이후 니스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하게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왜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이유를 알았을 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버지에게 자수를 권유하려 했다. 그 와중에도 루미는 계속해서 증거를 찾고 있었고 버즈의 카세트에 삼촌이 살해 당할 당시가 녹음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레오에게 연락을 했고 레오가 카세트를 찾게 된다. 레오와 다윈은 그 내용을 듣게 되고 니스라는 단어가 나오고, 레오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레오는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사실 그날 누가 레오를 죽였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레오를 만나러 갈 때 니스가 입었던 후드를 들고 나간 다윈과 끈에 의해 목이 졸려 죽은 레오를 보고 누가 범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이 책은 아마 이 사회와 현 세태를 비판하려고 창작한 작품일 것이다. 2016년에 나온 작품이라는 점도 당시 촛불 집회와 같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국민들의 움직임이 있던 시기에 딱 적합했던 것 같다. 프라임 스쿨이 현재의 특목고와 자사고라고 생각할 수 있고 각자의 죄와 잘못된 것들을 감추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모습은 당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제작과 같은 행태, 부정과 부패를 은폐하려하는 소위 말하는 높으신 분들, 그리고 삼촌의 죽음의 비밀을 밝히려 했지만 결국 밝히지 못하는 루미의 모습은 당시 진실을 밝히려 했지만 권력 앞에 무릎 꿇어야 했던 이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악의 대물림을 잘 표현하는 작품이다. 권력으로 살인을 가릴 수 있는 그런 사회는 다시는 돌아와서는 안된다.

하지만 니스 영의 살인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6살의 어린 나이에 1지구에 살고 있는 9지구 출신의 아버지와 그 사실을 알아버린 친구, 그 친구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말하려고 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 해서든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중 어느 순간 니스를 용서하게 되었고 니스라는 인물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그의 살인을 정당화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는 \’살인을 정당화할 수 있는 사유가 있을 수 있는가\’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았다. 니스라는 인물은 16살에 친구를 죽이고 그것을 숨기고 살아가면서 단 한 순간도 자신을 위한 삶이 없었다고 말한다. 친구 제이가 1지구에 9지구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 12월의 폭동 당시의 사진을 감추기 위해서는 기밀에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고 그러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공상가였던 니스는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문교부 차관이 된 니스는 12월의 폭동 당시의 사진들을 기밀 자료로 3급 이상의 고위공무원의 아이디가 있어야만 열어볼 수 있도록 옮겼고 그럼에도 불안함에 아버지가 찍힌 사진을 모두 지워버린다. 공부에는 관심도 없고 공상가였던 그가 어떤 한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원하는 길이 아닌 아버지를 위한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어쩌면 니스는 몸은 컸지만 마음 속은 16살 때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가 아니었을까? 이미 커버려서 그 어디에도 기댈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더 상처 받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니스라는 인물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는 인물이었다.

물론 살인이 정당화될 순 없다. 그냥 내 말은 현대에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살인이 아닌 이해가 가능한 살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다윈에게는 한 없이 다정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좋은 부자 관계이고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지만 한편으로는 먹먹하다. 이후 다윈이 니스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다윈이 혼란스러워하고 그로 인해 니스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을 보면서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관계라는 것이 깨지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다. 모두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나 또한 학교생활에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불편한 것도 많고 부모님 간의 친분으로 곤란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친구가 나의 학교생활에 대해 자신의 부모님에게 말하는 날에는 그 말이 나의 부모님의 귀에 들어가 곤란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걸 마음 속으로 삭히고 넘어가기 때문에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다만 다윈, 레오, 루미를 보며 한 가지 닮고 싶었던 점은 어떤 부당한 일이나 잘못된 부분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부터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도 앞에서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고 삭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걸 다 마음에 묻어두고 쌓아두는 성격은 아니라서 스트레스는 받지 않지만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니스 또한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범죄로 이어졌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니스가 제이와 대화를 나눴다면 일이 잘 해결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이는 9지구 출신의 사람이 니스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그를 척결해야 된다고 말할 정도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1지구와 9지구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면 다를 게 없는데 그것으로 신분을 나눴기 때문에 그들이 부와 빈 중에 빈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제이의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12월의 폭동은 상위지구인 1지구부터 3지구를 제외한 모든 지구의 사람들이 합세하여 벌어진 폭동이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간단하게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부모와 자식, 신과 인간의 관계만큼 그 주제가 복잡하다. 영원한 어린아이라는 건 없다. 아이일 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수한 가치, 우정, 긍정적 삶 등이 멸종되어 가는 현대 사회를 보여준다. 거주 지역이 곧 신분이 되는 구조적 차별에 맞서는 인간, 그리고 진실을 은폐하고 잘못됨을 수용함으로써 악의 세계를 유지하는 인간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책의 작가인 박지리는 1985년생이지만 이미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출판문학상에서는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도전적인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박지리라는 작가가 빨리 세상을 뜸으로써 한국의 문학계는 훌륭한 작가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책은 두껍지만 읽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몰입되어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졸음은 커녕 책에서 눈을 떼고 싶지 않아서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책을 손에 들고 있었을 정도였다. 나는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전세계에 읽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가치 있고 좋은 작품이다. 그리고 삶과 죽음, 죄와 벌, 부모와 자식 사이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는 작품이었다. 또한 이 작품을 읽을 때 몰입도를 가장 높여주었던 것은 니스와 다윈의 감정을 굉장히 자세히 묘사한다. 둘의 다정함, 다윈의 니스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 니스의 다윈을 향한 사랑, 그리고 사건이 전개되면서 그들이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고통을 잘 묘사한다. 이 점에 대해 너무 자세히 묘사하여 읽으면서 힘들었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이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각 인물의 감정을 독자에게 느껴질 정도로 잘 묘사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닌가?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꼭 다시 읽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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