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고도큐먼트로서 편지
현재 대한민국의 성인 대부분은 학창 시절 역사를 교과서에 쓰인 내용만을 배웠을 것이다. 사료가 쓰이더라도 책 한편에 조그마하게 실린 것들만을 볼 수 있었을 것이며 그것을 이용한 수업을 해 본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역사를 전공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사료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우리가 알기 위해서는 사료가 절대적인 역할을 하며 연구에 있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소수 지배층의 역사가 아닌 사회 구성원의 과반을 구성하는 일반 민중의 역사에 주목하고 연구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재에 흐름에 있어서 개인들이 이용하던 편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료로서 평가받는다. 역사는 승리하는 자의 역사라고 말하듯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기도, 그것을 역사서에 잘 담지도 않는다. 그러한 상황에서 편지라는 에고도큐먼트는 각 개인을 파악하는, 즉 거시사에 가려진 미시사를 밝혀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편지로 읽는 해방과 점령’이란 책은 편지라는 사료를 통해서 정치적 영역에서부터 일반 생활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과거 역사적 사실에 대해 폭넓은 식견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구성은 총 7장으로 구성되며 미군정의 점령과 대한정책, 북한의 상황, 민생문제, 좌우 대립과 각종 테러 등 각 장의 소주제에 따라 편지, 사진과 같은 자료를 이용하여 통일 직후 1945년부터 1948년 사이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사회 대다수의 구성원인 일반 개인의 편지를 담고 이를 역사적 사실과 맞추어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변무련이란 아이와 이창규라는 인물이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이 해방과 함께 귀환 이후의 일상 회복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 기존 역사를 재구성하는 편지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대중에게 알려진 역사뿐만 아니라 가려져버린 역사, 기저에 깔린 역사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먼저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1945년 해방부터 모스크바 삼상회의, 미소공동위원회 등으로 이어지는 굵직한 역사만을 다룰 뿐 일부 우익단체, 정당의 부정적 행동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책에서는 유력자의 편지, 일반 민중의 편지, 예를 들어 여운형과 정문자라는 여인의 편지를 통해서 그들의 심각한 테러 활동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그것을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보편적인 일이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음으로 하지와 굿펠로우의 편지, 웨드마이어의 보고서 등을 통해서 미군정이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정치가와 정치단체에 대한 생각과 대응 그리고 대한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945년 9월 미군정이 한반도 남쪽 지역을 점령한 이후,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바로 미군정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던 속내는 우리 한국사회가 어떤 방향을 나아갈지, 그 흐름에 대해서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편지의 범위를 조선인에 한정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의 편지까지 주목하여 그들의 정신에 깔려있던 조선인에 대한 생각, 그 사이에서 조선인의 삶에 대해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예시로 마에다 젠지로라는 일본인의 편지에서는 그들이 절도, 소매치기 등의 사회문제의 주범이라고 지목하며 해방 직후 일본 사회가 조선인을 불온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찾아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식민 지배를 어떻게 정당화하고 있는지를 편지를 통해서 파악하며 다채로운 역사해석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교과서에 쓰인 역사에만 주목했다면 우리가 사이에 숨겨진 역사를 주목할 일이 있었을까?
정리하자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편지나 사실에 주목, 그것에 나타내고 있는 역사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하면서 개인이 역사를 구성하고 파악하는데 더욱 풍요로운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편지 = 개인의 삶? 시대상황?
저자는 책의 초반에서 근래 사회사와 일상사로 연구가 확대, 구술사와 같은 자료들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에서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역할과 행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과연 작가의 의도한 대로 민중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편지의 대부분은 일반 민중의 편지보다는 김구, 이승만, 여운형 등과 같은 유력한 정치가나 단체의 대표와 같은 이들의 편지를 많이 인용하고 있다. 즉 여전히 거시사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유력자의 편지가 많이 남아있기에 그러한 자료 사용이 많을 수밖에 없음은 인정하지만 이는 초반에 밝힌 목적과는 맞지 않은 방향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책에 수록된 편지들이 과연 당시의 시대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편지라는 것은 개인이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각이 가진 시각, 의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작성 의도가 불순한 경우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김희경이라는 여성이 웨드마이어에게 보낸 편지는 이승만을 향한 찬양편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이승만에 대한 지지, 그리고 이승만을 지지하지 않는 자는 국민이 아니라고 말하는 만큼 편향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 편지에 대해서 이승만 세력이 여성을 저자로 하여 다수의 의견인 양 보이도록 한 편지라고 파악했지만 분명 편지에 담긴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잘못된 해석으로, 나아가 당시에 대한 잘못된 역사지식을 형성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다.
▪ 배제하기엔 너무나 큰 편지의 중요성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해방 직후는 혼란의 시대이자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자 그 영향은 아직까지도 이어지며 그 사이에서 일반 민중의 삶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를 단순히 지도자의 시선에서만 파악하기에는 너무 편협적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의 행동의 방향이 다수의 민중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역사 전체를 구성하기에는 부족하며 일반 민중의 삶을 다루는 것이 그 시대를 파악하는데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미군정 또한 편지검열을 단속 목적도 있지만 일반 민중의 여론을 살펴보는 자료로써 이용하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편지라는 사료는 역사 구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저자도 이러한 가치 때문에 편지를 책의 소재로 설정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저자가 편지를 파악하는 것처럼 우리도 편향성을 파악하며 편지라는 다채로운 사료를 이용할 수 있기를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