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록에 민감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나라 말이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기록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나라에서 전쟁과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선비들은 식량을 제쳐두고 기록물들과 서책들을 보따리 싸서 피난 갔다고들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민족은 과거의 기록에 철저하다. 선조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우리는 기록에 기반을 둔 역사에는 둔감한 편인 것 같다. 나 또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만했지만, 내가 알지 못한 파묻혀버린 기록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주 4.3 사건 또한 그 중 하나다. 여러분들은 역사 교과서에서 제주 4.3 사건을 보았는가? 모두들 사건 이름을 듣기만 했거나 혹은 아예 몰랐다던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와 1954년 9월 21일까지 무력진압과 충돌로 인해 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이렇게 참혹하고 아픈 역사를 고발한 소설이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이다.
이야기는 순이삼촌의 죽음으로 시작해, 끝에는 순이삼촌이 이러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30년 해묵은 총알로 비유해 서술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순이삼촌의 죽음은 이 소설에서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들의 현재까지 이어지는 고통과 후유증을 상징하는 것 같다. 순이삼촌은 작중에서 4.3 사건을 겪고 살아남아 소설의 현재시점까지 후유증과 슬픔을 안고 살았던 인물로, 그녀의 삶에서 역사적 사건의 비극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다.
<순이삼촌>을 읽으며 이렇게 잔혹한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소설 안의 사건 묘사는 다 읽기 힘들 정도로 참혹하고 비극적이다. 글로만 읽었을 뿐인데 힘들 정도라면 실제로 겪은 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사건을 이제서야 알게 된 내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왜, 나를 포함한 우리는 제주 4.3 사건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걸까.
제주 4.3 사건은 국가가 은폐하고 묻어감으로써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슬픈 역사 중 하나다. 4.3 희생자들의 고통을 땅에 묻고 등을 돌림으로 인해 순이삼촌과 같은 이들의 상처받은 가슴에 못을 박는 셈이 아닐까. 현기영 작가님은 국가가 은폐하는 제주 4.3 사건 사태를 고발하기 위해 <순이삼촌>을 집필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정권에 의해 출판 금지를 당하고 필화 사건을 겪는 등 많은 고충을 겪었다고 한다. 후에 1970년대에 문제작으로 꼽히며 수면 위로 드러나 고발소설의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순이삼촌>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제주 4.3 사건에 대해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답하지 못한다.
우리는 역사에 둔감한 것 같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역사 인식에 대한 교육 지원을 해주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가 모르는 슬픈 역사적 사건들이 아직 땅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에 고통을 받은 사람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즉, 묻혀진 과거라고 해서 그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순이삼촌>과 같은 역사 고발적 소설을 많이 읽는 것과, 우리가 모르는 역사적 사실들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는 둔감하더라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 나 또한 알고 있지만 실천이 부족한 만큼 이러한 이슈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하고 말해봐야지. 우리는 기록을 잘하는 만큼 역사에 민감한 편이냐고. 제주 4.3 사건에 대해 아냐고.